가을철은 축복받은 계절인가? 선남선녀가 만나 하나가 되는 혼례식이 많은 계절이다. 한마디로 결혼시즌. 하늘은 높고 온 자연은 풍성하니 누구든지 좋은 날을 택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결혼식, 축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의례행사이다.
최근 고급 연회장이나 대형 웨딩홀에서 혼례식을 많이 치르고 있다. 간편하고 준비할 것도 많이 줄어들어 찾아드는 이들도 축하해주는 마음이 편하기도 할 것이다. 잔칫집에 가면 은근히 기대하는 음식이 있지 않은가? 연회장에서 몸국은 먹지는 못해도 그래도 제주도 음식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먹는 재미는 있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제주 혼례문화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지혜롭고 예의를 갖췄다는 생각이 든다. 선남선녀가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는 당연한 것이지만 친족과 사돈, 온 동네 마을 사람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 도와 인륜지대사를 성사시켰으니 말이다.
혼인식 전날 친척과 하객들을 대접하기 위해 가문잔치를 벌이는 피로연을 하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수눌음을 통해서 동네일을 보게 된다. 일명 '도새기 잡는 날'이 되는 셈이다. 제주는 통시라는 돼지우리가 있어서 결혼을 앞두면 1~2년 전부터 대여섯마리 정도를 키우며 미리 준비하고 살을 찌워 목차게 썼다고들 한다.
그날 애써 준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한 음식이 몸국이다.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내장, 고기를 걸러낸 뼈, 순대를 모두 놓고 함께 삶아내는데 느끼한 맛을 덜어주는 배추와 미끈한 모자반을 넣고 메밀을 풀어 틉틉한 국을 만들었다. 갈조류인 모자반에서 얻을 수 있는 단백질과 칼슘, 철분, 요오드 및 비타민A와 B, 알긴산 등이 풍부해서 평소에 섭취하지 못했던 영양분을 공급받는 날이기도 하다.
도새기 괴기 석 점, 순대, 맷돌에 정성들여 빚은 둠비(두부)는 반의 기본. 이에 술이 빠질 수 없다. 고소리술은 차례에 중요한 제물이기도 했지만 손님접대용으로 빚었다. 보통 3일 이상의 정성을 드린 다음 술을 빚었고, 특별한 경우는 7일인 '일레정성'을 들였다. 솥에서 퍼낸 술죽은 체로 걸러 내어 술미음과 술지게미로 나누어, 술미음은 먹고 술지게미는 가축의 먹이로 주었으니 어느 누구도 빠짐없이 잔치 음식을 먹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가문잔치는 온 동네방네 즐거운 날이다.
결혼 당일, 새벽에 문전제를 올린다. 한 해 동안 안녕을 기원하며 신랑이 집을 나가기 전에 올리는 의례이다. 문전신을 중심으로 조왕, 칠성, 안네 등 집안의 여러 가신에 대하여 함께 대접하고 기원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가문을 돌보고 자손을 위한 의식이라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다.
제주도는 이미 많이 변화했다. 제주인보다 외부인이 더 많아졌고, 전통문화는 현대 문화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있다.
아직 물들지 않은 농어촌을 중심으로 옛날 혼례식을 그대로 치러보면 어떨까? 편리함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머지않아 제주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선 누군가는 전통을 이어나가야 한다. 집이나 마을회관에서 거행하고 전통적인 요소들만 살려서 문화를 지켜보는 거다. 대형 웨딩홀이나 고급 연회장에서도 제주 전통문화를 최대한 접근해 문화만큼은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촌의 자가에서 전통 혼례 방식을 취하는 신랑 신부에겐 정책적으로 보조를 해주거나 혜택을 주면 전통문화의 소실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제주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노미경 한국스토리텔링작가협회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