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路 떠나다]애월읍 새별오름 탐방로

[길 路 떠나다]애월읍 새별오름 탐방로
겨울 문턱에서 부드러운 오름 곡선의 미학에 빠지다
  • 입력 : 2013. 12.06(금)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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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문미숙기자

새봄의 들불축제장… 걷다 보면 황홀경
정상에 서면 한라산과 바다까지 품안에


제주시 평화로변에 있는 '새별오름'이라면 사람들은 으레 '제주들불축제'를 먼저 떠올려낸다. 해마다 초봄이면 오름 전체에 불을 놓아 삽시간에 활활 타오르는 광경이 너무 강렬해서일 게다.

가을이 저물고 겨울 문턱으로 막 접어드는 지난 주말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새별오름을 찾아나섰다. 서둘러 찾아온 강추위가 제법 매서운 날이었는데 제주시 신제주로터리에서 평화로로 접어들면서 간간이 눈발까지 날리기 시작했다. '오름을 오르려면 고생 꾀나 하겠다' 걱정하며 20분쯤 달려 도착한 오름은 하얀 눈을 뒤집어쓴 주변 경치와 함께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순간 걱정은 저만치 달아나고, 정상에선 또 어떤 비경을 펼쳐보일지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들불축제를 위해 잘 정비된 주차장에서 내려 1~2분쯤 걸으면 오름 탐방로 입구다. 해발 519.3m의 새별오름은 새벽 하늘에 샛별과 같이 외롭게 서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평화로변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르게 딱 버티고 선 오름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오름 동쪽 능선을 따라 난 탐방로로 접어들자 억새 물결 일렁이는 완만한 능선의 곡선미가 입구에서 봤던 균형잡힌 오름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방향에서 마주하느냐에 따라 변화무쌍한 제주오름의 매력을 맘껏 발산한다. 한 달 전만 해도 한창 절정을 이뤘던 탐방로 주변의 억새는 더욱 가벼워진 몸짓으로 바람결을 탄다.

눈이 쌓이면서 살짝 미끄러운 탐방로를 느긋하게 오르면서 주변 경치까지 감상하면서 '쉬멍 놀멍(쉬면서 놀면서)' 여유를 부렸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데 채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드디어 정상이다. 새별오름이라는 표지석이 딱 버티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야 새별오름이라고 이름붙여진 이유를 알 것 같다. 멀리서 볼 때는 하나의 오름 같았는데 주봉을 중심으로 5개의 봉우리들이 연결돼 있는 게 별 모양을 닮아있다. 오름은 서사면으로 넓게 휘돌아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와 북쪽으로도 작은 소형의 분화구가 있다.

흐린 날씨지만 오름 정상은 제주의 겨울을 한눈에 품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눈이 살짝 내려앉은 이웃한 수많은 오름들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길게 뻗은 평화로와 바리메오름·괴오름이, 그리고 멀리 동쪽으로 한라산 정상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섬 비양도와 바다가 보인다.

제주사람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 했던가? 오름 중턱 등 군데군데에 자리잡은 무덤들도 눈에 띈다. 무덤가의 현무암은 하얀 눈속에서 검은빛이 더욱 선명하다.

새별오름 북쪽 일대 광활한 초원은 고려말 '목호의 난'의 현장이기도 하다. 공민왕 23년인 1374년 명나라로부터 말 2000필을 요구받은 고려가 제주에서 말을 차출하려 하자 몽골에서 파견돼 말을 기르며 목마장을 관리하던 목호들이 300필만 내놓고 더 이상은 자신들의 적인 명에 보낼 수 없다며 공출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공민왕은 최영장군을 수장으로 전함 314척과 2만5000여명의 군사를 보내 새별오름 등 여러 곳에서 목호들을 토벌했다. 당시 제주에 살았던 목호들의 수가 상당했음을 말해준다.

새별오름 정상에서는 바로 서쪽으로 이달봉이 지척이다.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내려갈 수 있게 탐방로도 나 있다. 오름 전면이 억새물결을 이루는 새별오름과는 달리 이달봉은 소나무와 삼나무가 자라고 있어 초록물결을 이룬다.

새별오름만 탐방할 생각이라면 서쪽 능선을 따라 난 탐방로를 따라 내려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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