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방송사에서 방영했던 한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있다. 나이 예순을 넘어선 할배들과 누나들의 좌충우돌 여행기에서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의 소소한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필자 역시 화면 가득히 다가오는 유럽 도시의 풍경과 고색창연한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방송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동시에 '도시를 여행하는 즐거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리도 열광하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여행자마다 나름의 목적과 사연이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오래된 도시의 구석구석을 밟고 거니는 촉각적 여행을 하다보면 도시민들의 일상이 축적돼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와의 우연한 만남이 빈번하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장소의 역사성과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에서 여행자는 자신의 주체적 존재성을 체험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성찰적 깨달음을 얻는 즐거움이 여행을 멈추지 못하는 매력일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뿐만 아니라 폐허에도 이러한 장소들은 존재한다. 다만 잠재된 장소성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여행자들이나 시민들에게 장소를 인지시키는 방법으로 안내판이나 표지석을 세우는 손쉬운 방식이 적용된다. 그러나 일방향성의 정보전달을 통해서 그 장소와 사람간의 실존적 관계를 끌어내기엔 미흡하다. 그래서 매개적 역할을 할 무엇인가의 필요에 의해 상징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징조형물들의 가치는 설치된 장소의 표면 아래 누적돼 있는 역사성과 의미들을 끌어내어 지면 위에 서있는 사람들과 연계하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상징조형물 자체가 주체가 돼 도시민들의 이벤트를 이끌어내고 장소를 생성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역사성보다 동시대성에서 의한 장소라 할 수 있는데, 임시적이고 이벤트성이며 동시에 시민과 여행자가 함께하는 문화행위를 촉발한다. 장소와 이벤트가 결합해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여럿이지만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의 마당에서 행해지는'파빌리온(pavilion, 경미한 가설건축) 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런던의 하이드파크 켄싱턴 가든에 1970년대 개관한 조그만 미술관이다.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이 런던을 방문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대표적인 장소가 된 이유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라는 이벤트 때문이다. 미술관 측은 2000년부터 매년 세계적 명성의 건축가 한 명을 디자이너로 선정하고 전면 마당에 여름 기간 동안 파빌리온을 설치하는 문화적 행사를 벌여왔다. 세련된 공공장소를 런던시민에게 제공하려는 초기의 의도를 넘어서서 초청되는 건축가의 유명세와 파빌리온에 담겨있는 건축의 시대정신으로 세계의 건축가들이 관심을 집중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파빌리온에 앉아 여유로이 공원의 자연을 즐기며 담화를 나누는 런던시민들의 모습에 제주에도 이런 장소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이처럼 미술관 마당에 건축가의 작업을 세우는 일련의 과정은 도시에서 소중한 장소를 만들어내는 의미에 더해 건축을 문화예술의 한 분야로서 존중하는 상징적 문화행위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벤트를 뉴욕 현대미술관 PS1의 YAP(Young Architects Program )처럼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느 도시공간을 활기 있는 장소로 전환하는 이벤트로서 신진건축가들을 초청한다면 하나의 행위로서 다수의 문화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말미에 행해졌던'김창열 미술관 현상설계경기'과정에서 제주의 건축인은 심각한 자존의 상처를 입었었다. 하지만 지나간 과오는 현재의 교훈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제주의 신인건축가를 선정해 이 미술관에 파빌리온을 설치하는 문화이벤트를 제안한다.
<양건 가우건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