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표착 유구인들 일본인 위장했다

제주 표착 유구인들 일본인 위장했다
정성일의 '전라도와 일본'
  • 입력 : 2014. 02.21(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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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에 머물렀던 독일인 의사 지볼트의 '일본'에 등장하는 배. 제주나 영암 아니면 강원도 사람의 배로 추정된다.

1821년 8월 제주에 외국 배 한 척이 표류해온다. 그 배가 닿은 곳은 현재 지명으로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였다. 당시 이 배에는 사쓰마 출신 일본인과 함께 유구(지금의 오키나와)인들이 타고 있었다.

조선쪽에서는 유구인의 동승 사실을 몰랐다. 이때 표류민은 모두 사쓰마 출신의 일본인으로 파악해 조선 정부는 전례대로 바닷길을 이용해 이들을 모두 일본으로 송환하도록 했다. 같은 해 6월 제주에 표착한 유구국 사람 6명이 육로를 통해 북경으로 송환된 것과 대조를 보인다.

이는 1821년 8월 제주에 떠밀려온 유구인 20명이 자신들을 일본인으로 위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표착한 순간부터 조선 정부가 그들을 왜관측에 인도할 때까지 일본인인 것처럼 철저하게 위장했다. 일본인 이름을 쓰고 일본 복장을 했고 심지어는 일본풍 머리모양을 일부러 꾸미기도 했다.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가 쓴 '전라도와 일본'에는 이처럼 조선에 표착한 유구인이 일본인 행세를 한 사례가 처음 소개됐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1821년 유구인의 표류 사건을 일본 선박의 조선 표착으로만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유구인들의 일본인 위장은 1850년대에 이르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지만 이같은 사례는 유구와 일본 사이의 종속 관계를 중국과 조선에 은폐하기 위한 유구의 정책을 설명하는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조선시대 해난사고 분석'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해난사고를 적은 표류 기록을 주로 이용해 지역간 접촉과 교류의 역사를 분석해놓았다. 표류당한 개인을 통제 대상이나 송환 체제, 외교의 부속물로 보지 않고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잉태한 접촉이나 교류의 주체로 본 것이다. 표류 기록의 종류와 특징, 해난사고의 규모와 지역 분포, 제주·영암·강진·해남·순천·여수 등 전라도 서남해안 주민들의 일본(또는 유구) 표류, 나가사키에서 서양인 지볼트를 만난 조선 표류민의 이동 경로와 활동 등을 한국은 물론 일본 사료를 동원해 세밀하게 다뤘다.

특히 이 책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서쪽 길'의 존재와 역사적 의의를 규명하려 했다. 저자는 "왜관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졌던 '동남쪽 길'에 비해서 그 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서쪽 길'에 관한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한일관계사의 공백을 메워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경인문화사.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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