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지금 '제주올레'에는 '정낭'이 없다

[하루를 시작하며]지금 '제주올레'에는 '정낭'이 없다
  • 입력 : 2014. 02.27(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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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제주의 '올레'는 그 정신적인 의미에서는 성역(聖域)과 속계(俗界)를 엄밀히 구분짓는 과정으로서의 길이다. 한마디로 속계를 대변하는 한길(大路)에서 묻혀 들어오는 오탁(汚濁)한 것들을 털어내는 기능을 하는 길이다. 이 올레의 끝에 지금 대문의 역할을 하는 '정낭'이 있고 정낭을 집주인이 들어 올려 허락해 주어야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정낭'의 '정'은 '잠근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낭'은 '나무'의 오래된 제주 방언이다.

제주의 '올레지기'는 제주 신화 "남선비 본풀이"에 나오는 '남선비'이다. 이 '남선비'라는 이름도 '나무'의 옛말 '남ㄱ'에서 유래된 듯하다. 여기에 인격화해서 점잖은 '선비'로 호칭했을 것이다. 제주의 신앙적인 올레지기 '낭선비'에게 제(祭)를 올려 허락을 받아야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곧 '안심입명(安心立命)' 지대인 성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제주의 올레 이름을 카피한 '제주올레'가 세계인의 올레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이 '제주올레'에는 '올레지기'가 없다. '정낭' 없이 활짝 열어 젖혀진 '제주올레'는 속계(俗界)와 성역(聖域)이 구분되지 않는다. 제주정신이 깃들지 않아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올레다. 고유의 마을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레 몇 번 코스'로 불린다. 올레꾼들은 '제주올레'를 '마라톤 경기장'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제주올레'에는 주인은 없고 대처(大處)에서 온 객(客)들만이 왁자지껄 떠들며 행세하다 갈 뿐이다.

도 정부는 '제주올레'라는 문화적 공간을 처음 조성할 당시부터 그에 수반되는 순이익과 자연 훼손에 따른 복원 대책은 제대로 발표하지 않은 채, '제주올레'로 인한 예상이익만 부풀리다가 올레코스에 속한 지역민들의 실질적인 경제이익을 체감할 수 없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도로 확장 공사까지 무분별하게 감행해서 이제 제주에는 '제주인의 정신문화'는 없고 '길'만 있어 보인다. 바람난 '길'이 판치는 세상이다.

지난 2013년 2월 21일 <곶자왈사람들>의 제보기사에 따르면 올레코스 14-1(청수 곶자왈지대) 목장농로에 모 기지국을 설치하던 중 법정 보호종으로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인 개가시나무가 훼손된 것을 발견했다. 시설 관계자측은 '몰라서 그랬다'는 한마디로 무식한 대답만 했다. 그래서 적법한 조치도 없었다. 이에 <곶자왈사람들> 관계자는 제주의 허파라는 곶자왈에 탐방로를 시설하면서 멸종위기야생식물법정보호지역을 피하기는 커녕 '보호종에 대한 안내 표지판'조차 설치하지 않아 이곳을 지나는 올레꾼들이 멸종위기 식물에 대한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자연과 사람이라는 유기적 관계를 고려한다면 지역민들이 감수해야하는 정신적 손실은 너무 커서 더더욱 알 수 없다.

이는 진정한 '제주 올레지기'로서의 '정낭'이 없기 때문이다. '정낭'은 '들어오려는 자'에게는 '문턱'이지만 '들어있는 자'에게는 '보호막'이며 민간신앙적인 측면에서는 '수호신'이다. 올레꾼들은 일만 팔천 여신이 산다는 제주에 올레지기 '남선비'는 물론 지역 명칭조차 잘 모른다. 이것은 애초부터 '제주올레'를 마라톤 명칭인 '올레 몇 번 코스'로, 신성함이 사라진 상품명으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모든 이름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 과거 선비들은 제주의 돌담길이 길게 이어진 것을 보고 '검은 용'에 빗대어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올레길에 어떤 이름을 불러야 할지 의문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도가 '일만 팔천 여신들이 지키는 성역(聖域)'으로 가는 길목으로서의 올레문화를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마땅할 것이다. <고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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