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청년 세대의 꿈 찾기와 제주 공동체의 미래

[하루를 시작하며]청년 세대의 꿈 찾기와 제주 공동체의 미래
  • 입력 : 2014. 03.12(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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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얼마 전 칠순이 넘은 어머니와 다섯 살 배기 조카딸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손녀에게 "커서 뭐 될 거야?"라고 물었다. 그동안 이런 질문에 아이는 공주, 의사, 발레리나 등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곧잘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고민과 약간의 짜증이 섞인 말투로 "묻지 마세요. 저도 그게 고민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다섯 살 배기의 진지한 인생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그 아이는 요정, 마법사, 닭 키우는 사람 등 자신만의 꿈을 꾸고 있다.

나는 대학생들과 자주 대화를 나눈다. 대학 생활과 진로에 대한 멘토링을 하기 위해서다. 많은 학생들이 나에게 "제 꿈을 못 찾겠어요, 꿈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한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나는 "꿈을 찾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꿈 찾기의 시작이다"라고 대답한다. 나 역시 사십을 넘어선 지금도 내 꿈을 명확히 하기 어렵다. 2500년 전 공자는 오십에 들어서야 지천명(知天命)이라며, 하늘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하셨다. 위대한 성현조차 나이 오십에야 겨우 찾는 꿈을 이십대 중반에 당장 찾으려 하니 당연히 어렵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부모의 직업이 나의 직업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에게는 꿈보다 생존 그 자체가 중요했다. 근대화 세대는 집과 차량을 소유하고, 가정을 이루는 외형적 성장이 목표였다. 민주화 세대에게는 권위주의 극복이 시대적 과제였으나, 역설적이게 개인적인 꿈은 금기시됐다. 지난 100년간 꿈은 꾸어서 안 되는 것이거나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꿈을 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세대들에게, 꿈을 못 찾는 청년 세대가 답답하게 보일 것이다.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거나 나약한 세대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청년 세대가 만들어 낸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근대화는 표준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제 근대화의 신화는 무너졌고, 세상은 표준화된 획일성을 거부하고 있다. 전문화된 인재가 세상에 나오는 속도보다 직업의 분화가 더욱 빠르다. 더욱이 안정적이지도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혁신 사례로 주목한 닌텐도는 불과 5년도 안돼 적자 기업이 됐다. 20년 후 의사, 변호사가 계속 안정적인 직업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고용 없는 성장이 도래하면서 취업의 문은 더욱 좁아져 가고 있다. 실패에 대한 사회 안전망은 취약하다. 과거의 꿈 찾기가 2차 방정식이라면, 지금은 6차 방정식 수준이다.

이에 대응하는 한국의 교육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장점을 발굴하는 재능 교육과 재능을 사회와 연결하는 진로 교육은 아직 부족하다. 여전히 표준화된 성적을 가지고, 들어갈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고, 학점과 스펙을 쌓아 취업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꿈을 가지는 것이 어렵다고 꿈 찾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어렵다는 것은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20년 후 제주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그 모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20년 후 제주의 모습은 지금 청년세대들의 꿈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일 거라는 점은 명확하다. 모든 세대와 사회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 자원을 청년 세대의 꿈 찾기에 투자해야 한다. 청년 세대가 자신의 재능을 발굴하고, 많은 꿈을 꾸고, 도전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다함께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김종현 (주)NXC 대외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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