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필자가 사는 곳은 제주시 동북부 지역에 자리한 작은 시골 마을 평대리이다. 마을 산간 쪽에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인 비자림이 있다. 수령 500~600년 된 오래된 비자나무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는 비자림은 1993부터 천연기념물 374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는 곳이다. 숲 한 바퀴를 도는 데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 1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마음의 위안과 삶의 여유를 얻어 간다.
비자림에 들어서면 자박자박 밟히는 화산송이와 가까이서 울어대는 새 소리, 파도처럼 밀려오는 바람 소리가 온전히 자연 속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자연 스스로 만들고 가꾸어 온 숲. 비자림의 매력은 바로 그것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에 취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비자림을 찾고 있다.
작년 말쯤, 오랜만에 비자림을 들렀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옛적 올드 팝송을 틀어놓은 듯 했다. 처음엔 옆 관광지에서 넘어오는 소리인가 싶었다. 혹은 관광객 중 누군가 크게 음악을 튼 것도 아닐까 생각했다. 소리의 근원을 찾다 보니, 숲 속 곳곳에 작은 바위로 위장해놓은 스피커가 있었다. 바로 그 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음악 선곡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소리에 숲 속의 소리가 묻히고 있었다.
그 뿐일까. 비자림 코스 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돌멩이길(오솔길)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른바 필자가 그네 나무라 부르던 무척이나 우람한 나무 옆길을 없애고 우회로를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통에 나무를 보호하고자 만든 조치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 해도 원래 울퉁불퉁하던 돌멩이길에 온통 잡석 같은 자갈을 깔아놓은 것은 무엇일까. 그 덕에 예전보다 걷기가 좀 더 편해지기는 했지만 걸을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돌 부딪히는 소리가 귀에 무척 거슬렸다. 그 소리에 새 소리도 묻히고, 바람 소리도 묻혀 예전 호젓하게 걸으며 즐기던 귀의 호강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푸른 초목과 대비되는 마치 회색빛 콘크리트를 연상시키는 자갈색은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결국 걷는 둥 마는 둥 어영부영 산책을 마쳤다. 여유와 평안, 안정을 얻으러 갔다가 마음만 잔뜩 찌푸린 채 돌아온 셈이다.
왜 굳이 그 길을 그렇게 고쳐(?)놔야 했을까. 예전 돌멩이길은 다소 거칠고 걷기에 불편한 점이 있긴 했지만 오히려 그 같은 자연미가 더욱 매력적인 길이었다. 아마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좀 더 편하고 손쉽게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자연은 사람 손이 닿으면 닿을수록 파괴되고, 반짝반짝 빛나던 생명력을 잃어가는 법이다. 진정한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오히려 자연이 주는 불편함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 눈과 발이 편하고 좋아보일수록 자연은 속으로 곯아가고 있다.
이는 비단 비자림뿐만이 아니다. 특히나 요즘 환경 정비다 뭐다 해서 호젓하던 숲이나 오름, 해안가에 자꾸만 길이 나고, 여기저기 푯말을 세우고 뭔가 인위적인 것들이 많이 들어서는 것 같다. 물론 필요에 의한 것들도 있겠지만 때론 불필요하거나 굳이 세우지 않아도 되는 것들도 있다. 너무 과하면 안 한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자연이 딱 그렇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고, 또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삶의 위안과 평안을 선사한다. 뭔가 자꾸만 더하면 더할수록 자연은 그 자체로 빛을 잃고 무너져버린다. 그런 후에, 우리들은 어디에서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찾을 것인가. <정은주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