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그곳을 탐하다](7)해짓골

[골목, 그곳을 탐하다](7)해짓골
재밌는 골목… 그 안에서 벌이는 유쾌한 실험
  • 입력 : 2014. 04.10(목) 00:00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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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짓골 풍경

하나의 골목 안에 두개의 마을로 나눠져
발길 뜸한 곳에서 새로 출발하는 이들도
해짓골 골목 도시계획도로 개설 공사 앞둬
옛 색깔과 재미 사라질까 우려의 목소리도

골목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흐른다. 사람들의 발길 닿는 곳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돌고 돈다.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한 곳일수록 다양한 이야기가 시간 속에 묻혀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물찾기' 하듯 골목을 탐하고, 떠났다가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다.

제주시 해짓골에서 만난 이들은 골목의 가능성을 말했다. 침체된 원도심의 현재를 말하기보다 더 나아질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다른 곳에는 없는 원도심 골목의 얘기를 잘 모아낸다면 잠자는 골목을 깨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들이 골목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다.

▲골목 어귀에 빈집

#사람 떠난 곳에 남은 빈집

새주소로 하면 중앙로 3길. 산지로와 중앙로 사이를 잇는 길이 '해짓골'이다. 이 골목은 거대한 '경계선'과 같다. 한 골목 안에 살아도 골목을 중심으로 주소지가 달라진다. 골목 북쪽으로는 건입동, 남쪽으로는 일도1동이다. 하나의 골목 안에 두개의 마을, '재밌는 골목'이다.

1960년대만 해도 해짓골은 이 일대의 중심 골목이었다. 칠성골과 북신로, 해짓골이 당시 주요 통행로였다. 지금처럼 큰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지 않을 때였다. 50년 전부터 해짓골 인근에 살고 있다는 김월주(84)씨는 당시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지금처럼 골목 골목이 이어져 있지 않았어요. 칠성골과 북신로, 해짓골이 이 일대 골목의 큰 줄기이었죠. 칠성로에는 상점가가 형성됐지만 해짓골에는 일반 주택들이 대부분이었고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 없는 거리이지만 골목은 비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빈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언뜻 보기에도 오래돼 보이는 집들은 내버려진 지 오래된 듯 보였다. 골목 인근에 흑돼지거리가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거기에서 그쳤다.

▲비앤비 판 게스트하우스 인근

#다시 찾은 골목… 가능성 보다

사람들이 발길을 돌린 곳에도 몇몇 이들은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 유년시절 이곳에서 보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신창범(50)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중앙로에서 해짓골을 따라 걷다보면 '비앤비 판 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눈에 띈다. 바로 신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신씨의 게스트하우스 건물은 그의 나이만큼의 세월을 지나왔다. 1968년 지어졌으니 올해로 40여년 된 건물이다. 사람 뜸한 골목에 주인 떠난 빈집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동했다. 새단장을 거쳐 2012년 9월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열었다.

"해짓골 골목에 빈집들이 많아요. 지금은 게스트하우스지만 이 건물도 집주인이 떠나면서 7년 동안 비어있던 집이었죠. 지어진 지 오래돼 손볼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어요. 하나의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이 여러개로 나뉘는 옛날 건물 구조가 눈에 들어왔죠."

그가 해짓골에 자리를 잡은 건 침체된 원도심이 안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이 죽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단다. 신씨의 게스트하우스는 골목에 다양성을 불어넣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신씨는 "음식점, 게스트하우스, 문화 공간 등이 지금보다 더 늘어난다면 골목길을 다니는 재미가 더할 것"이라며 "골목을 구경하는 재미가 다양해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앤비판 게스트 하우스 인근에선 골목에 재미를 불어넣으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구 코리아극장 옆에 자리 잡은 제주문화카페 '왓집'이 실험 공간이다. 김정희, 윤선희, 문주현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제주문화카페 '왓집'을 운영하고 있는 윤선희, 김정희, 문주현.

왓집은 카페이지만 차를 마시는 공간만은 아니다. 제주와 관련된 소품, 악세사리 등을 구입할 수도 있고 때때로 열리는 전시회를 감상할 수도 있는 곳이다. 카페보다 '문화공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림 직하다.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세 여자는 요즘 동네의 이야기를 모으는 일에 푹 빠져있다. 재밌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이야기가 모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재미있는 걸로 배불러보자'는 왓집의 모토와도 연결되는 작업이다.

그들이 처음 주목한 건 왓집의 건물 이야기다. 지금은 카페 건물이지만 1970년만 해도 문산부인과였던 곳이다. 산부인과 건물에서 레스토랑, 그리고 카페로 여러 차례 모습을 달리해온 건물 이야기는 골목의 변천사와도 맞닿아있다. 이처럼 그 지역만의 이야기를 살릴 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지역의 이야기가 빠진 도시는 허울뿐인 것 같아요. 타지역과는 다른, 그곳만의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이죠. 누군가 하지 않으면 곧 사라질 이야기들입니다. 골목의 이야기를 한 데 모아 남기는 게 중요한 이유죠." 문주현 씨의 말이다.

해짓골은 머지 않아 변하게 된다. 도시계획도로 개설 공사에 따라 길이 356m, 폭 15m로 모습을 달리한다. 제주시는 오는 12월 사업이 완료되면 국내외 관광객 등의 유입효과를 높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골목 개발을 놓고 옛골목만의 색깔과 재미가 사라질까 하는 우려가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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