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르방이 세워졌던 제주성 동문 앞 S자형 골목. 강희만기자
도문화재 지정불구 힘센 기관 전유물로 전락원위치로 이전해야 가장 제주다운 성곽 가능정확한 소재지 규명 및 3D 기록화 작업 과제
제주성 돌하르방은 그 자체가 가장 제주적인 상징성을 지닌다. 국내 다른 읍성에서도 성문 앞 골목에 돌하르방과 같은 석상을 세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제주성은 돌하르방과 짝을 이룰 때 온전히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읍성과는 다른 제주성만의 상징성과 고유성을 드러내게 된다. 제주성 정비에 있어서 돌하르방 이전ㆍ복원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제주성 동문ㆍ서문ㆍ남문 앞에 세워져 있어야 할 돌하르방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돌하르방이 언제부터 뿔뿔이 흩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현용준 선생이 돌하르방을 조사하던 당시 남긴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다.
1962년 돌하르방을 처음 조사한 현용준 선생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조사 당시 돌하르방은 관덕정 앞 4기, 뒤쪽에 2기, 삼성혈 삼성사 앞길 2기, 삼성사 입구에 4기, 남문통 만수당약방 앞 우물통 골목에 1기, 동문로터리 현 명승호텔 앞(옛 삼천서당 북측ㆍ남측 입구)에 4기, 동문통 감리교회 뒤쪽 소로에 8기 등 도합 25기가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감리교회 8기만의 원래 위치의 돌하르방이라고 언급했다.
미군정지도인 '산지항축항도'의 일부로 동문 앞 S자형(점선 안) 도로가 뚜렷하다
1960년대 이전에 이미 돌하르방은 동문지 앞 8기를 제외하고 제자리에서 옮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문지 앞 돌하르방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즉 동문 밖의 소로를 보면 넓이 약 3m의 S형 소로로, 그 두 개의 굽이에 각각 2조씩 8기가 건립돼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문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약 35m 떨어지면 길은 한번 굽이돌고 길 좌우에 2조가 마주 세워져 있다. 다시 50m쯤 거리에서 길은 굽이돌고, 그 굽이에 앞과 같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원래 위치에 남아있던 돌하르방은 제주성 동문 앞에 서있던 8기였다.
동문 앞 돌하르방이 세워졌던 S형 옛 골목은 지금도 남아있다. 동문지 앞에는 너비가 2~3m 남짓한 골목이 있다. 골목길 입구 담벼락에는 '우석목 2로'라 표기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석목은 돌하르방이라 불리기 이전의 이름이다. 따라서 돌하르방이 위치하고 있던 골목이어서 이같이 이름을 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골목은 제주기상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넓혀지고 골목길에 다세대 주택이 들어서면서 입구 쪽이 약간 넓혀졌지만 S형으로 이어져 있다. 지금은 소형 자동차 하나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길에 불과하지만 어엿한 제주성을 향하는 핵심 도로였다. 이 길을 통해 성안 사람들은 동제원 등으로 나다녔다. 성 밖의 사람들도 제주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골목을 통과해야 했다. 골목 양 옆에 버티고 선 돌하르방은 든든한 지킴이었다.
S형 골목은 일제 패망 후 제주에 주둔한 미군정이 남긴 지도인 '산지항축항도'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영문으로 'Town of Cheju(Sanji)'라고 표기된 이 지도를 보면 북쪽과 남쪽 성은 완전히 해체돼 도로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제주성 남성과 동성 일대는 치성이 뚜렷하게 남아있을 만큼 성곽이 보존되고 있었다. 1960년대 초까지도 동문 앞 돌하르방은 제자리에 건재하고 있었으나 어느 새 뿔뿔이 흩어졌다.
삼성혈 앞에 세워진 돌하르방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앞의 돌하르방
동문 앞에 남아있던 돌하르방 8기는 어디로 옮겨졌을까. 동문 앞 돌하르방은 제주도청(2기), KBS제주방송총국(2기), 제주대학교(2기), 서울 국립민속박물관(2기) 등지로 흩어졌다. 서문 밖 돌하르방은 삼성사, 제주국제공항 등지로 옮겨졌으나 일부는 어디로 이전했는지 알 수 없다. 남문 밖 돌하르방도 관덕정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등지로 옮겨졌으나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는 것도 있다.
돌하르방은 지금은 소위 힘센 기관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기관이 이전할 때마다 돌하르방도 떠돌이 신세가 된다. 최근 제주시 연동에서 시민복지타운으로 KBS제주방송 청사를 이전하면서 돌하르방 2기를 제자리에 돌려줘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제주목관아로 우선 이전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 돌하르방은 제주성 동문 앞에 세워졌던 돌하르방이다.
이처럼 돌하르방은 제주도문화재로 지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이나 삼성혈 등 각 기관의 입구 등을 지키고 있는 돌하르방은 대부분 무방비에 노출된 상태이다. 제대로 보존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훼손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시는 제주성 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동문ㆍ서문ㆍ남문 복원과 함께 돌하르방도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제주성 정비 복원 이전이라도 흩어진 돌하르방을 제주목관아로 옮겨 효율적인 보존ㆍ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요지부동이다. 돌하르방을 원래 위치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선뜻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흩어진 돌하르방의 정확한 소재지를 파악하는 일도 급선무다. 돌하르방은 1960년대 초 조사 이후 1971년 도문화재로 지정됐지만 학술연구는 미진하기만 하다. 아직까지 정확한 크기와 구조, 실태 등에 대한 정밀 실측 등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때문에 돌하르방에 대한 현 실태파악과 더불어 3D측량 등을 통해 기록화 작업 등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곧 돌하르방의 위상 회복뿐만 아니라 가장 제주다운 제주성 성곽을 온전히 복원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윤형기자
1미군정지도인 '산지항축항도'의 일부로 동문 앞 S자형(점선 안) 도로가 뚜렷하다 2삼성혈 앞에 세워진 돌하르방 3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앞의 돌하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