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집념 어린 연구 담아
고지도·문헌 통해 진실 추적
"일본해 명칭 100년도 안돼"
한국전쟁 당시 열네 살 소년이던 서정철은 미군이 찻집에 놓고 간 지도에서 동해에 'Sea of Japan'이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 바다가 모두 일본의 바다라는 말인가.' 10년 후 프랑스 유학 중 그는 베르사유궁의 루이 14세 응접실에서 'Mer Orientale'(동해)라고 쓰인 지구의와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불문학도였던 서정철(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과 그의 부인 김인환(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인생은 그 때부터 180도 바뀐다.
부부는 지난 40년 동안 사재를 털어 200여점의 고지도와 많은 고서를 수집하며 동해와 일본해 이름의 진실을 연구하는데 매달렸다. 2004년엔 공들여 모은 고지도들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동해의 이름을 바로잡기 위해 유엔 대표단으로 국제회의에 참여하면서 일본 측의 거친 정치적 압력을 경험했고 일본의 환일본해연구소를 방문하면서 그들의 활발한 연구활동을 목도하기도 했다. 또한 20여년간 동해연구회 세미나를 지속하며 국내외 학자, 전문가와 학문적 교류를 나눴다.
서정철·김인환의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는 그같은 집념어린 추적이 빚어낸 동해와 일본해 이름에 관한 연구서다. 2000년이 넘는 토착명이지만 지금은 세계인의 뇌리에서 사라진 이름 '동해'를 되찾기 위해서 쓰여졌다.
부부는 고지도와 다양한 고문헌을 바탕으로 동해와 일본해의 진실을 추적해간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동해는 2000년전부터 한민족과 만주족이 사용해온 토착명으로 역사적 정당성을 지닌다. 둘째, 일제강점기에 국제수로기구에 등재된 '일본해'는 일본에서도 정착된 지 100년이 안된 외래명으로 그 바다를 둘러싼 다른 국가들을 배제하고 있다.
동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고문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 중국의 '산해경', '후한서' 등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중국 학자들은 중국 사료에서 2000여년전에 만주족들이 동해를 언급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이러한 사실은 서양 고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평생 700여종의 지도를 발간한 대규모 지도상이었던 프랑스의 드 페르는 1703년에 펴낸 '동아시아'의 상단 여백에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바다이나 타타르인(만주인)들은 이 바다를 동해라 부른다"는 이례적인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표기는 여러 지도 제작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18세기 서양 고지도는 '동해'또는 '한국해' 표기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지은이들은 "이제 우리는 동해 명칭이 역사적으로 각 나라에서 어떻게 표기되었고 어떤 과정을 지나 일본해로 둔갑하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사.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