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어른이 되는 꿈

[하루를 시작하며]어른이 되는 꿈
  • 입력 : 2014. 09.03(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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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오년 생이다. 우리 셈 나이로 올해 49세. 흔히 얘기하는 <촘살>도 아닌데 또래들보다 학교를 일찍 보내주신 덕분에 뱀띠들과 어울려 어깨동무하며 놀았다. 나이가 좀 들어서는 동기들보다 어리다는 것에 한 살을 거저 얻은 듯 은근히 즐겁다. 아직도 철들지 못한 채 어느덧 중년, 어른이다. 그런데 아이처럼 '어른'이 되고 싶다. 중년에 '어른'이 되는 꿈을 꾼다.

지난 8월, 4박5일의 일정으로 프란체스코 교종께서 우리나라를 다녀가셨다.

한국천주교회는 이 방한일정을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불렀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께서 이 땅의 죄를 대신 짐 지기 위해 태어나신 날이고, 아이들에게는 산타가 선물을 주러 오시는 날이다. 그래서일까. 종교적 믿음의 여부를 떠나 많은 이들이 이번 방한을 지켜보며 행복해하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은 듯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톨릭교회 행사를 위한 방한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소박한 행보는 남달라, 비신자들까지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령에도 침대나 일등석도 없이 오랜 시간 날아오시더니 일정 중 많은 시간을 소외된 낮은 곳으로 이동하셨다. 아이들을 예뻐해 반기시고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끝까지 따뜻한 관심을 잃지 않으셨다.

깊은 눈동자는 맑고 미소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했다. 낱낱의 소탈한 움직임을 둘러싸고 있는 소박한 행장에 나의 치레가 부끄러웠다. 부패한 정치, 타락한 교회들을 향하여 직설적으로 날리는 명료한 화법에 통쾌했다. 국가원수 이상의 존경받는 종교지도자가 걷는 실천적인 겸손한 발걸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말씀이 허식이 아님을, 긴 말을 대신하는 간절한 초 메시지는 흘러 넘쳐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눈물짓게 했다.

힘없는 소수들이 다수들과의 다른 뜻을 이야기하기 힘든 게 우리 사회다. 분단의 현실은 늘 정치적 견해와는 무관한 문제들이 충돌할 때에도 종래에는 이념 갈등으로 몰아 양쪽을 갈라놓는다. 당면한 나의 문제이건 아니건 곳곳에 널려있는 이런 갈등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나날의 일상 때문에 올바른 가치판단은 유보되어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 죄 짓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의 이런 갈등과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아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가 일일이 손내밀어 주셨다. 마치 내 손을 잡힌 듯 마음이 따뜻해졌다.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는 말씀. 순간, 종교는 이미 꽃향기처럼 울타리를 뛰어 넘는다. 어른이 되고 싶다. 그 분의 연세와 비슷한 나이가 되는 30년 후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한다.

건강한 어른이 되고 싶다. 병들어 쇠약해진 노구는 다른 일을 즐겁게 할 만큼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약간 느리고 굽을지언정 경쾌하게 걷고 밝게 손 흔들며 웃고 싶다.

진중한 어른이 되고 싶다. 오래 새겨듣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깊게 생각하되 짧게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허심하게 와 털어놓고 그것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는 상담자가 되고 싶다.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 좌충우돌하지만 반짝이는 젊은이들의 재치와 타오르는 신명에 찬물 끼얹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더구나 허망하게 말끝마다 '내가 왕년에…' 라든가, '내가 어렸을 때는…'을 말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넉넉한 어른이 되고 싶다. 써야 할 곳, 좋은 자리에 내가 번 내 자산을 내 주머니에서 아낌없이 꺼내놓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차린 밥상이, 갓 무쳐낸 겉절이의 산뜻한 아삭함과 묵은지의 깊은 맛이 잘 우러나는 맛난 것이 되기를 바란다.

어른이 되는 꿈을 꾸는 내가 담아 둔 그 어른의 말씀들. "삶을 발코니에서 관망하지 마세요." "진실로 행복할 용기를 가지십시오." "전진하고 일구어내고 고백하십시오."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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