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에서 사랑·이별까지
500여종 자료 수집·분석
어긋난 사실 등 바로잡아
1951년 1월 눈 내리는 제주항에 도착한 화가 이중섭(1916~1956). 신원 확인 절차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 배치받는다. 한국전쟁 시기였다. 제주항에서 서귀포까지 가는 길은 고난이었다. 고구마를 얻어먹으며 소 외양간에서 밤을 지새운 일도 있다. 여비가 없어서 3일동안은 눈속을 걸어서 서귀포의 어느 성당에 다다른다.
이중섭 가족이 짐을 풀어놓은 곳은 서귀포시 서귀동 512-1번지. 한 평도 안되는 셋방을 얻었다. 딱히 돈벌이 수단이 없었던 탓에 배급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바다로 나가 게를 잡거나 해초를 따고와서 죽을 쓰거나 반찬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중섭이 '고통과 환상의 땅'이었던 제주를 떠난 것은 1951년 12월. 부산에서 오페라 공연이 이루어질 만큼 전쟁 상황이 날로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확인한 그는 부산 귀환 계획을 세웠고 1년간의 제주생활을 접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중섭의 제주도 시대 작품은 합판에 유채로 그린 '서귀포 풍경 1 실향의 바다 송' 등이 있다. 더러 은지화 '정(情)'(1~2)을 두고 제주시절 작품인지 논란이 있지만 피난지 제주에서 이중섭과 어울렸던 장수철 시인은 훗날 담뱃갑 속 은박지를 꺼내 그림을 그리는 이중섭의 모습을 기록해놓았다.
서귀포 시절을 포함 이중섭이 건넜던 시대와 생애, 삶과 예술, 사랑과 이별, 사후 신화의 탄생과 진실 등을 좇은 책이 나왔다. 미술평론가 최열이 쓴 '이중섭 평전'이다.
40여년 전 열일곱의 나이에 이중섭 작품과 우연히 만난 지은이는 세월이 흘러 미술사를 연구하게 되면서 이중섭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았다. 언젠가 이중섭에 관한 기록을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오랜 세월 동안 500여종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며 흩어진 퍼즐을 맞췄다.
9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묶여나온 '이중섭 평전'은 길지 않은 생애동안 식민지 백성으로, 피난민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낸 외로운 사람으로 살았던 화가의 삶을 복원해냈다. 이중섭은 고향 평원을 떠난 이래 평양, 정주, 원산, 도쿄, 서귀포, 부산, 통영, 진주, 마산, 서울, 대구 그리고 다시 서울로 열 곳이 넘는 도시를 떠돌았다.
그 과정에서 일부 기록과 기록이 어긋나 있었고 막연한 추측과 환상이 사실로 둔갑해 그의 생을 대표하는 중요한 장면으로 남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중섭이 오산고보에 진학한 배경, 도쿄 유학시절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한 이유, 통영 체류 기간, 정신병력을 보인 시기 등을 바로잡았다. 생애별 작품, 이중섭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정보, 관련 문헌도 보기 쉽도록 실었다. 돌베개. 4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