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이 시대, 제주 땅에 살고 있는 건축가의 비애

[하루를 시작하며]이 시대, 제주 땅에 살고 있는 건축가의 비애
  • 입력 : 2014. 10.08(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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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예년같지 않은 선선한 여름을 보내고 어느덧 절기가 바뀌어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기운이 요즘 건축계에 전해지는 안타까운 소식에 상처입은 가슴을 더욱 시리게 한다.

건축학도 시절 서양건축사를 공부하다 보면 르네상스시대 이전까지는 영화 '미이라'의 악당 임호텝(Imhotep)을 포함한 몇 분을 제외하곤 좀처럼 건축가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 등 건축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건축가들이 나타나는데, 그 출현 배경이 신흥자본가들의 지적욕구를 대리하는 역할이었음을 알게 되고는 건축학도로서의 자긍심에 심각한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건축가가 되고난 후에는 건축은 시대를 표상하는 실천적 예술행위이며 문화이고 그를 행하는 건축가는 동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라는 자존감으로 태생적 원죄를 떨쳐 버리고자 하여 왔다.

실제 대한민국에서 건축가가 되기 위한 건축사 라이센스를 취득하려면 쉽지 않은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에서는 5년제 과정의 매학기마다 설계 스튜디오를 통과하기 위해 수많은 리서치, 드로잉과 모형작업으로 밤을 지새우는 힘든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후 설계사무소에서 3년의 실무 경력을 쌓고 매년 400여명 남짓 뽑는 시험을 통과하여야만 비로소 건축사가 될 수 있다. 더구나 5년제 대학의 공부로도 부족하여 대학원은 물론 외국 유학의 이력이 있어야 건축가로 대접받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건축학도들은 그 지독한 과정 중에 그 원죄를 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무실을 열고 사업자등록증을 받아들면 입장은 확연히 달라진다. 600년 전 르네상스 건축가들과 다를 바 없이 생존을 위해서는 안타깝게도 자본의 욕망에 종속하게 되는 것이다. 건축가란 직능에 그런 태생적 원죄가 있음을 잘 알고 있는 교수님들에게서도 '업자'라 폄하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온갖 주변인들로부터 자연환경과 도시경관을 망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세상이 비하하듯 단순하게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다. 건축이 놓이는 땅을 존중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환경을 구축하려는 윤리적 태도를 기본으로 한다. 그 순간 몇 푼의 용역비에 구애 받지 아니한다. 이러한 건축가의 본성을 이용하는 야비한 의뢰자도 있지만 최대 이윤이라는 자본가들의 목적과 달리 건축가는 자신의 세계라는 이상이 있다. 이것이 '배신감'과 '비애감'을 가슴 속 깊이 묻고 포커페이스로 살면서도 건축을 포기하지 않는 건축가의 자존감인 것이다.

요즘 제주는 어떠한가! 2년 전 언론기사만 보더라도 외자유치를 하였다며 장밋빛 미래를 전하더니 근래에는 중국자본에 의해 제주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도가 연일되고 있다. 또한 유사 이래 최대의 자본집중과 개발사업에 의해 제주의 경관과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본질은 환경을 제어하는 제주사회의 시스템이 부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개발사업 관련한 일련의 언론보도에 따른 결과를 보면 우려스럽게도 본질은 건드리지 못하고, 건축가 개인에게 책임을 던지고는 제주 사회가 '면죄부'를 얻으려 하는 것이란 의구심과 회의가 있다. 그리고 그 회의는 이 시대 제주에서 자본의 욕망과 환경의 존중이라는 양극단의 중도를 탐색하고 있는 건축가들의 가슴에 '비애'가 되어 다가온다. <양건 가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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