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아다지오의 위로

[하루를 시작하며]아다지오의 위로
  • 입력 : 2014. 10.09(목)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어깨를 다독여주며 삶에 공감과 위로를 함께 음악을 나누고 싶은 가을입니다. 우리의 삶은 희로애락 속에 있고 다음 여정이 무엇인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험난한 환경일지라도 넘어설 수 있다는 용기와 확신에 찬 믿음이 있다면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는 의지의 시간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잠시 쉼이 필요한 우리의 시간에 아다지오(Adagio)의 의미가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아다지오는 이탈리아 말로 '편안하게' 혹은 '편안한 상태로'라는 의미로 음악과 무용에서 사용되는 느린 템포를 말합니다. 이탈리아 발레마스터인 카를로 블라시스(Carlo Blasis)는 "아다지오를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무용수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할만큼 발레리나에게 아다지오는 화려한 표현에 앞서 느리면서 열린 움직임으로 우아한 포즈를 끊임없이 표현해내야 하는 부분입니다. 지루하리만큼 무한 반복의 과정과 내면을 표현하고 하는 의지를 통해서야만 얻을 수 있는 아다지오입니다.

음악에서 아다지오는 매우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되는데 너무 무겁고 애절한 느낌을 받게 해줘서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담고 있는 음악 같기도 합니다. 슬픈 선율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공감'이라는 이해가 통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아다지오는 삶의 의지와 열정을 위한 위로와 쉼의 음표들로 가득 차 있기도 합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 때문에 항상 사랑에 목말라 했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이 청년시절에 쓴 작품 가운데 하나가 비창 소나타입니다. 베토벤 자신이 직접 붙인 'Pathetique'라는 부제는 프랑스어로 '비장한, 감동적인, 감격적인'의 뜻입니다. 이 곡의 제목을 한자어인 비창(悲愴·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픔)으로 불리는 것은 가깝고도 먼 옆나라의 왜곡된 번역 영향 때문입니다. 이 비장함은 진지함을 넘어선 심각함이며, 숭고한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심각함에도 베토벤은 2악장에서 아다지오 칸타빌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충분히 노래하라고 합니다. 비장함을 너머 결국에는 환희에 다다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차르트의 생기발랄한 음표 뒤에 숨어 있는 것이 슬픔이라면 베토벤의 비장함 뒤에는 환희가 숨겨져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Sergey Rachmaninoff, 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 아다지오는 '충분히 슬프고,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라고 공감해주는 주는 음악입니다.

라흐마니노프가 24살에 처음으로 교향곡 1번을 발표했는데, 선배 작곡가로부터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일곱 가지 재앙 중 하나에 속한다'라는 크나큰 혹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작곡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답니다. 니콜라이 박사와의 상담과 '나는 다시 곡을 쓸 수 있다' '그건 최고의 곡이 될 것이다'라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다시금 작곡한 작품이 그의 피아노협주곡 2번입니다. 그간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 마음 깊숙한 슬픔이 이 피아노 협주곡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슬픔이 슬픔을 알아채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음악적 지식이나 교양이 아니고도 그냥 알 수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오늘의 우리에게 "너도 그랬구나….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며 마음을 두드립니다.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하라는 듯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느리지만 순간의 음들을 끊어지지 않게 충분히 표현하라고 합니다. <홍정호 모던아츠 지휘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34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