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후배가 다녀갔습니다. "나도 사는 게 힘든데 왜 내 주위에는 더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만 있을까? 어딜 가든지 상처받고, 제일 약한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사람들 얘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때로는 내게도 위로해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형은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잖아요. 늘 얘기 들어주고, 뒤치다꺼리는 도맡아서 하고. 형은 힘들어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니 복 받을 거예요. 형이 복 받지 못하면 다향이라도 받을 테니까 그냥 팔자려니 하고 살아요."
"……?"
대학 MT때 새벽녘에 잠들고도 제일 먼저 일어나서 설거지를 하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나까지도 늦잠을 자버리면 모두의 속이 불편할 텐데'하는 생각으로 난장판을 정리하고, 따뜻한 해장국을 끓여냈지요. 올해는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애정을 갖고 대해도 남 탓과 원망을 하면서 늘 칭얼대는 아이, 말을 삐딱하게 하면서 폭력성을 드러내는 아이, 컴퓨터게임에 중독돼서 치료받는 아이 등등.
지난 여름에는 이혼하고 두 딸과 어렵게 사는 친구가 다녀갔습니다. 활달한 성격에 춤과 노래, 풍물 등 재능이 많은 친구인데 수년 동안 스스로를 파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지요. 그래 통화 말미에 "다 내려놓고 며칠 쉬어가" 했습니다. 함께 차와 커피를 마시고, 마실 길을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시로 돌아가기 전날 밤 친구가 울음을 삼키면서 말합니다. 잘살 때는 친구들과 학교 선후배도 많더니만 애들하고 먹고 살겠다고 장사를 하다가 망하니까 어느 누구도 알은 체 하지 않더라고. 이 세상에 쉬어가라고 품을 내준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지난 2월에 제주를 떠나서 부안군 변산면, 그러니까 다향이네 학교 근처에 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변수가 생겨서 연말께 다시 서울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지요. 그 전에 이 곳에 살면서 마음을 써준 분들께 커피를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볶은 커피와 도구를 챙겨가지고 격포수산시장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애초에 대접하려고 했던 아주머니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전화를 받고 온 앳된 얼굴과는 달리 반백의 아주머니 말합니다.
"감사해요. 제가 식당을 시작할 때는 뭔가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돈벌이에 집착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이 나이에,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으로 무척 우울했어요. 그래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식당일에 매여 있고, 남편이랑 애들도 돌봐야 하니까 마음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근사한 커피를 대접받으니 너무 행복해요."
준비해간 커피가 순식간에 동났는데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청년이 묻습니다. "선생님. 제 여자 친구가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늘 입에 달고 사는데 불러도 될까요?" 커피가 바닥났다고 하니까 "퇴근 뒤에 집으로 찾아가도 될까요?" 합니다. 그래 퇴근시간을 물으니 저녁 8시라고 합니다. 부담스러운 시간이지만 여자 친구를 위하는 청년의 마음이 예뻐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부랴부랴 청소를 하고, 다시 커피를 볶았습니다.
누구나 외롭지요. 그래서 관계 맺기를 원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위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는 약간의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내놓을 수도 있으니 이번 생(生)은 행복배달부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성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