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제주시 원도심, 속도의 두려움

[백록담]제주시 원도심, 속도의 두려움
  • 입력 : 2014. 11.17(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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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정수복씨와 그의 아내는 김포공항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제주관광책자를 집어들었다 도로 놨다. 지난 15~16일 잇따라 열린 제주시 원도심 재생을 위한 컨퍼런스와 옛길 탐험에 초청돼 항공편으로 제주로 향하던 길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10여년간 살았던 부부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관광지' 안내를 기대했지만 공항에 놓여진 제주홍보물엔 제주가 아니어도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들 부부만이 아니라 섬 지역인 제주가 지닌 남다른 삶의 '풍경'을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곳곳의 박물관은 물론 중산간 오름 자락에 자리잡은 휴양시설, 한적했던 해안가를 꽉 채운 카페들, 시골 구석구석까지 생겨나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등 도심과 교외의 구분이 무색한 경관이 눈앞을 막는다. 무슨무슨 개발 계획이라는 말이 따라붙지 않을 뿐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이면 어디든 골조를 올리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비하면 삼도2동, 일도1동, 건입동 일대가 포함되는 제주시 원도심은 '미개발지'라고 불러야 하나 싶다. 동네를 바꾼다며 도로를 헤집고 큼지막한 건물을 쌓아올리는 중장비 소리가 세차진 않다. 하지만 원도심이 지금 이 모습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신도시 개발에 밀려 공동화의 길을 걸어온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재생 사업이 전국에서 유행처럼 진행중이고 제주도 예외가 아니어서다. 정부에서 실시한 도시재생 선도지역 공모에서 탈락한 제주시가 그와 유사한 취지의 국비 사업을 지원받기 위해 또다시 원도심 용역을 추진중이고 제주도는 원도심 재생과 관련한 민간 참여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원도심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구도심 활성화'를 목표로 2000년 이래 10회가 넘는 용역이 진행됐다. 문제는 이들 용역이 향한 곳이다. 용역이 마무리되면 적지 않은 예산을 원도심에 투입하는 일이 뒤따른다. 새로 보도블럭을 깔고 상가 아케이드를 설치한 일이 한 예다.

이즈음 제주섬이 변해가는 모양새라면 앞으로 골목의 향기를 품은 채 그곳에 터잡고 살아오던 제주사람들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제주시 원도심이 될 지 모른다. 유서깊은 건축물이 하나둘 스러졌지만 일제강점기 제주읍성이 헐리기 전 옛길이 적지 않게 남아있는 지역이 제주시 원도심이다.

하지만 원도심 정책이나 용역 결과에 따라 예전처럼 자꾸 무언가를 덧입히고 만들어내는 일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5년 말 준공된다는 산지천변 탐라문화광장이 원도심 재생의 얼굴을 하고 기억을 안은 집과 길을 허물지 않았나.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지자체의 움직임에 걱정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속도전 치르듯 단기간에 수십억, 수백억을 쏟아부어 문화센터를 지었다, 옛 건축물을 정비했다, 답사길을 만들었다며 성과를 보여주고 말 일이 아니다. 그곳을 고립된 섬처럼 꾸미고 조성할 게 아니라 제주도가 바라보고 있는 개발의 방향을 냉정히 진단하며 원도심의 위상을 그려야 할 것이다. 승용차로 20분이면 가닿을 수 있는 지역에 수십층 짜리 건물이 세워지고 중산간 마을에선 곶자왈이 파헤쳐지는데 원도심이라고 무탈할 수 있겠나. 원도심은 지속가능한 제주의 앞날을 압축해 보여줄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진선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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