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스마트폰 문자 알림음에 단잠을 깼다. 한 선배에게서 날아온 단체문자. 모르는 이름들도 수두룩하게 초대된 이가 백 명은 족히 되겠다. '제가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으신 분들~ 열어보지 마시고 즉시 날려 버리세요!!! 아무래도 제 폰이 해킹당한 듯합니다. ㅠㅠ…' 결혼 청첩 스미싱이 뜬 모양이다. 초대장을 클릭하는 순간 악성 앱이 설치되고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소액결제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주르륵 달리는 댓글들을 보니 밤새 무심결에 열었다가 이미 낭패를 본 사람이 여럿 있는 것 같고, 이른 새벽부터 급히 문자를 날릴만 했다.
며칠 후 다른 분에게서 또 비슷한 긴급문자가 왔다. 그날 우리는 단체 채팅방에서, 개인정보가 속수무책으로 마구 털리는 현실에 비분강개하다가 얼마 전 아들 장가를 보내 곧 할머니가 될지 모르는 그 선배가 또 시집을 간다 하니 부케는 누가 받을 것인지, 드레스는 어디서 할 것인지를 농담하며 '당분간 결혼하지 맙시다!!!'라고 쿡쿡거리다가 씁쓸하게 대화를 끝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보이스 피싱은 아이 울음소리를 가장한 연기로 엄마들을 혼비백산하게 하더니, 어눌한 발음이나 기계음으로 거짓 정보들을 흘리며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약삭빠르게 주머니를 털어 갔다. 한동안 개그프로에는 이 일당들의 엉성한 사기 행각이 그려졌는데 매번 실패로 끝나는 짜임새는 재미있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오늘 저녁뉴스에는 고수익 아르바이트라 속이며 어린 학생들을 범죄에 이용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 핸드폰에는 다른 문자와 구별되는 알림음이 있다. 폰에 피싱류를 잡아주는 앱을 깔았더니 의심되는 문자들을 걸러주는데 그 소리는 마치 '피싱 피싱'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문자들의 답장을 채근받아 본 적 없고, 행사 불참에 대한 서운함을 듣거나 불이익을 당한 적 없으니 분명 대부분 스팸인 게 틀림없다. 가끔은 알고 있는 행사 일정 문자까지 걸러지는 웃지 못할 경우가 있지만, 나름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편이다.
걸러진 문자들을 보면 참 다양하다. 인터넷쇼핑몰의 광고나 사 금융권의 대출문자는 새로울 것도 없고 결혼청첩장, 생일·돌잔치, 행정심판, 물품반송, 층간소음민원, 민방위소집훈련, 법원, 정부민원포털 민원24, 무료응모권, 택배배송안내, 이벤트 당첨, 쓰레기투기 등 참 다채롭다.
그 발군의 창의성만 보자면 양 엄지손가락이 저절로 올라가겠다. 음성·문자·이메일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의 공격. 잠깐 방심하면 '아차' 하는 순간 거짓미끼에 속아 물고기처럼 수시로 낚이는 세상이다. 이러다가는 조금 있으면 멀쩡히 산 사람을 망인으로 몰아가는 흉측한 '부고(訃告)문자'까지 뜰지도 모르겠다. 생각지 않은 사건사고가 빈번한 요즘, 멀쩡하게 속고도 남지 않겠는가. 끔찍하다. 버젓이 배우자 있는 사람을 재혼시키는 스미싱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이제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스마트 한' 공간에도 대문이 있다면 걸쇠를 걸어두고 싶을 것이다. 나도 '초대 사절(招待 謝絶)'이라고 크게 써서 붙여두고 싶다. 이대로라면 차라리 다시 예전처럼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하고 나머지는 바람에게 맡겨 두는 게 나으리라. 얼핏 들어도 물어물어 찾아와 기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 하고 더불어 나누다 가지 않을까. 더러 답답하다고 타박하기도 하겠지만.
이 아름다운 계절,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설렘으로 마음자락 곱게 단장하고 나설 그런 '참 초대'가 그립다. <김문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