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귤나무가 부러질 듯 돌담 밖으로 휘어져 있다. 봄바람에 꽃향을 피워내더니 초여름 장마를 견디고 어느새 다보록한 결실을 잉태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만추(晩秋)의 풍요로움, 제주에 사는 사람만이 덤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한해가 다 지나갔다.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인생의 목표는 상이할지라도 삶의 종착점은 누구나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곳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손이 닿지 않는 곳 높이 있다고 여긴다. 나 역시도 그리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반백이 넘는 물리적 나이의 연륜은 행복이란 주위에 소소히 퍼져있으며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 역시 행복에 대한 나의 가치와 나의 태도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얼마 전 나는 책 한권을 우편으로 받았다. '행복한 리더가 행복한 일터를 만든다' 포스코ICT 허남석 사장이 펴낸 경험서다. 오랜 기간을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한 덕에 알게 된 그와의 인연이 저자로부터의 책선물을 직접 받는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책이라기보다 그와의 해후였다. 소박하고 진솔한 그의 이야기에 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고 참으로 오랜만에 독서로 밤을 새는 젊은 쾌감을 맛보기도 했다.
그가 일했던 포스코ICT는 포스콘과 포스데이터가 통합되어 태어난 회사였다. 그러나 경영상 이유로 합치게 된 컨트롤 기술과 IT전문 기업의 통합은 다른 업종과 기업문화의 차이로 예상치 못한 갈등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를 봉합하기 위해 사장으로 부임한 그가 생각해 낸 것은 '감사(感謝)', 광양제철소 소장으로 있을 때 농심의 손욱 회장 권유에 의해 쓰게 된 감사일기가 자신과 주위 환경을 변화시켰음을 확인한 터였었다. 1주일에 1선(善) 착한 일하기, 1월 2독(讀) 좋은 책 읽기, 그리고 1일 5감(感) 감사일기 쓰기, 그는 '행복나눔125'라는 타이틀로 감사를 전도하기 시작하였고 놀랍게도 540일만에 물과 기름 같았던 두 회사의 내적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직원들의 성과몰입도 역시 두배 이상 높이는 결과를 거두었다. 이제는 포스코 그룹 전체의 경영철학으로 부상한 감동적 감사스토리.
감사는 태도이다. 마음을 다하는 진정성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나에게 ~를 해줘서 감사하다는 시작단계부터 ~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는 내공의 높은 수위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 감사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가 되면 그것이 행복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구는 에이브러햄 매슬러(Abraham H. Maslow)의 말처럼 어느 단계가 달성되면 계속 더 높은 곳을 기준으로 삼기에 절대적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감을 정량화시키는 것 역시도 불가능하다. 개인마다 만족의 수위가 다르고 당사자의 주관적 가치관에 따라 성취된 만족도가 차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을 느끼는 최고점은 우호적 인간관계가 좌우하게 마련이다. 내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내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물질적 풍요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얻은 행복감보다도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여유롭게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어느 시인이 말한 '행복'처럼, 나는 한권의 책에서 감사를 배웠다. 그리고 행복을 찾았다. <허경자 서귀포문화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