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愛 빠지다]암자순농장 김순국·김정희 부부

[제주愛 빠지다]암자순농장 김순국·김정희 부부
"농업인은 만물박사가 돼야 해요"
미국 이민중 암 진단…마지막 삶 위해 제주 선택
  • 입력 : 2014. 12.05(금) 00:00
  • 강봄 기자 spri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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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경면 조주리에서 친환경농법으로 감귤농사를 짓는 김순국·김정희 부부. 강경민기자

별명이 '조수리 털보'다. 아니, 털보였다. 예전에는 머리카락은 등허리까지, 수염은 덥수룩해 그야말로 '산적' 같았다. 반면 성악을 전공한 덕에 목소리는 의외로 부드러운 중저음이다.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에서 인생의 제3막을 시작한 미국 시민권자가 있다. 특히 전문농업경영인(농업 마이스터) 과정까지 마쳐 재배품목에 대한 전문기술과 지식, 경영능력을 다른 농업인에게 교육하고 컨설팅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검증받았다.

암자순농장 대표 김순국(59)씨와 아내 김정희(61)씨는 2008년 제주에 새둥지를 틀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였던 이들 부부는 각각 성악과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가였다. 이후 198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앞서 시부모님과 형제들이 미국으로 가 있거나 가게 돼 국내에 홀로 남게 되자 이민을 결정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반도체사업을 펼치던 김 대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혈액암'이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6개월, 길어야 9개월이라는 말을 들었다.

김씨 부부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따뜻한 곳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인생의 마지막 삶을 제주에서 보내기로 선택했다. "'따뜻한 남쪽나라'라는 말만 믿었죠. 그런데 바람이 너무 강해 '속았다'라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아내 김씨의 웃음기 어린 푸념이었다. 조수리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돼지를 잡아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김 대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마을에 적응해 갔으며, 이웃들은 재미삼아 감귤농사를 지어보라며 감귤 밭까지 제공해 줄 정도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고향이 대구였던 그는 어릴 적부터 사과농사를 지어봤던 터라 과수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 자연스레 감귤에 눈을 돌리게 됐다. 감귤재배기술은 물론 제주 농촌을 이해하기 위해 농업기술원과 제주대학교 등에서 진행하는 농촌경영자 과정과 농어촌체험지도사 등의 교육을 이수했다. 특히 아들의 권유로 시작한 농업마이스터대학은 기술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친환경농업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유기농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3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가 감귤나무에 주는 유일한 영양제는 직접 만든 액비와 퇴비다. 액비는 감귤과 생선, 현미 등을 오랜 시간 발효시켜 만들고 퇴비는 다른 밭에서 키운 작물을 이용한다. "유기농을 하는 분들은 자신의 몸이 먼저 반응해요. 농약이라도 뿌릴 때면 몸에 이상이 생긴답니다. 친환경농법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이렇게 친환경으로 감귤을 재배하다 보니 못난이 감귤이 많다. 그래도 옛말이 있지 않은가. 못 생겨도 맛은 좋다.

김 대표는 "농업인은 만물박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양을 이해하기 위해선 화학자가,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선 기술자가, 유통을 위해선 판매업자가 돼야 한다"며 "농업인은 장인의 정신으로 최고의 농산물을 만들고 판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늦게 물어봤다. 암자순. '암' 환자와 함께 '자'급을 이루려는 '순'수한 수눌음이란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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