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路 떠나다]서홍동 흙담소나무길

[길 路 떠나다]서홍동 흙담소나무길
  • 입력 : 2014. 12.19(금) 00:00
  • 최태경기자 tkchoi@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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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있고 기품있는 소나무들이 이어지는 흙담소나무길.100년이 넘은 소나무 96그루가 남아있다. 숲길 주변 지역이 개발되고 주택이 들어서 있어 위태로워 보인다. 공존과 상생의 해법이 필요한 길이다. 사진=최태경기자 tkchoi@ihalla.com

기품있는 소나무, 울창하지만 아쉬움 남는 길
동홍 홈플러스~서귀북초~생수천 600m 구간
건물 15층 높이 100년생 소나무 90여그루 장관
개발화로 생육환경 악화… 공존·상생 해법 절실

서귀포시 동홍동 홈플러스 윗길로 시작해 서홍동 서귀북초등학교를 거쳐 생수천까지 이어지는 600여m의 길.

별 의미 없이 걷는다면 그냥 '길'이지만 차량이 오가는 도로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써 주위를 둘러보면 울창한 소나무들이, 그것도 운치있고 온후한 기품을 가진 고목들이 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서홍동 마을 유산이자 고목거리인 '흙담소나무 숲길'이다.

서귀북초 인근에 있는 설촌 유래가 적혀 있는 비석에 따르면 고려초에 설촌된 이 마을은 서기 1300년경 홍로현청이 설치되고 문물의 중심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마을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화로와 같다고 해서 이 고장 선인들은 홍로라고 불러왔고, 남쪽이 허해 재앙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흙으로 담을 쌓고 못을 파서 맑은 물을 고이게 해 주민의 안녕과 번영을 누려왔다고 한다.

흙담소나무 숲길은 1910년 당시 향장이던 고경천 진사가 봉우리로 둘러싸인 마을에 재앙이 닥칠 것을 대비해 흙담을 쌓고 주위에 소나무를 심으면서 조성됐다. 이 숲길을 기준으로 서홍과 동홍마을이 분리됐다고 한다.

현재 서귀북초를 중심으로 600여m 구간에 자라고 있는 96그루의 100년생 소나무들은 5층 건물 높이인 15m에 달하고 둘레가 2m가 넘을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무심코 지나쳐 왔던 주택가 길이 역사적 의미까지 더해지면서 새롭게 보인다.

이 곳 소나무들은 지난 2002년도에 산림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마을 숲으로 지정됐으며, 1990년에는 지역보호수로도 지정돼 새마을지도자협의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짧지만 운치있는 길을 걷다보면 안타까운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된다. 숲길 주변 지역이 개발되고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소나무 뿌리는 아스팔트 포장에 둘러쌓여 버렸고 나뭇가지 주위로 전선들이 덕지덕지 이어져 있다. '숲길'이라는 단어보다는 그냥 '소나무길'이라 불러야 맞을 정도다.

흙담소나무길과 이어지는 돌담길.

서귀북초 인근에 설치되어 있는 설촌유래 비석.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보호해야 될 곳인지, 개발을 위해 옛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20여분 정도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거리의 길이지만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서귀포시에서는 식재 이유와 연대가 분명하고 역사의 상징물로서 보호가치가 높기 때문에 지난 2011년 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지만,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고압선을 땅으로 매설하는 지중화사업도 계획했지만 소나무 뿌리에 해를 입힐 수 있기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다. 소나무 생육에 최악의 환경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오랜기간 마을을 지켜온 고목을 애물단지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않다고 한다.

흙담소나무길을 걷다보면 인접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쯤, 그 때도 마을을 지켜온 이 고목들이 버티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속하게 개발화가 진행됐고, 계속해서 개발이 진행중인 현재. 공존과 상생의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길을 걸으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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