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맞는 '3인 3색' 제주도 이주이야기]

[새해 맞는 '3인 3색' 제주도 이주이야기]
제주는 이주민 천국… 사람·문화·자연이 ‘손짓하네’
  • 입력 : 2015. 01.01(목)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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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이주 역사의 시작은 삼성신화에 기인할 만큼 오래됐다. 옛 탐라국의 개국(삼성)신화에 따르면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솟아났다. 맏이를 양을나, 둘째를 고을나, 셋째를 부을나라 하였는데, 이들이 왜(일본)나라의 공주 3명과 혼인해 지금 제주시의 일도·이도·삼도동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후 1276년에 전 세계를 호령하는 몽골이 제주에 목마장을 만들고, 일본 정벌에 사용할 전선의 건조장을 제주에 설치하는 등 몽고 민족의 이주 역사도 있다. 현재 몽골의 언어 중에 '제주'라는 말의 의미가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제주도와의 각별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제주는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조선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을 비롯한 왕족과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씨 등 외척, 조선후기의 대표적 학자인 추사 김정희 등 유학자까지 유배인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옛 제주인들의 제주문화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오현단'의 오현 중 김정과 정온, 송시열이 유배인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홀로 유배되면서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유배인들이 제주에서 여인과 관계를 맺고, 혼인을 한 뒤 자식을 낳기도 했다. 조선 역사상 최장기(3대에 걸쳐) 유배객이었던 제주목사 조정철은 유배시절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살했던 제주의 여성 홍윤애를 의녀로 칭하고 직접 비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제주4·3과 한국전쟁 이후 육지와 해외로의 이주가 생겨나고 전후 베이비 부머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자리를 찾아서, 이들의 자녀세대는 고등교육의 기회를 잡기 위해 출향하는 도민의 수가 늘어 인구감소를 걱정해야 했다.

인구증가를 위한 당국의 계속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줄어들던 인구수가 제주의 본연의 아름다움인 독특한 섬 문화·자연이 빛을 발하면서 증가세로 돌아섰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나선 결혼이민자, 망명지(정신·문화·자연환경 등의 이유)로써의 이주자, 자신의 몸에 흐르는 뜨거운 제주인의 피의 자극을 통해 귀향하는 출향민 등의 이야기를 통해 '이주민 천국'으로 변모해 가는 제주의 생활상을 들여다 본다.

베트남 출신 전지예·전다희 자매 "'코리안 드림' 실현, 이주여성 희망될래요"


사진=김명선기자

'코리안 드림'을 품고 제주로 이주한 베트남 출신 전지예(26)·다희(23)씨 자매.

이들 자매는 각각 결혼 5년·3년차에 접어든 결혼이민자다. 지예씨가 고향마을에서 먼저 제주에 정착한 지인의 소개로 남편인 김복만(45)씨를 만나 결혼하고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정착했다.

지예씨는 제주땅을 처음 밟게된날(2011년 1월 14일)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 눈이 내리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이었다. 그것도 한국에서 제일 따뜻하다는 제주에서 말이다.

남편은 다음날 그녀를 이끌고 한라산 기슭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눈썰매장에 데리고 가 베트남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동생인 전다희씨는 지예씨의 주선으로 남편 오영목(41)씨와 결혼해 언니와 같은 하모리로 이주했다.

전씨 자매가 한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한데는 새로운 삶을 살고싶다는 강한 의욕때문이었다. 부모님과 4명의 형제가 함께 살았던 그녀들의 고향은 농삿일과 자매들이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생활비로 보태도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

제주에 먼저 정착한 지예씨의 만족도가 높았기에 다희씨가 올 수 있도록 적극 주선했고, 현재는 셋째의 결혼을 위해 신랑감을 알아보고 있다.

이들 자매의 친정부모가 육아를 돕기 위해 현재 제주에 와 있는데 셋째까지 결혼해 한국에 정착하면 부모의 이주까지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씨 자매를 포함해 친척 6명이 한국으로 결혼이주했다.

지예씨는 "결혼 후 아들인 유성·유민이를 낳아 단란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최근 다문화이해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며 "제주에서 직장일과 엄마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는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해 한국으로 이주하는 결혼이민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희씨는 "올해 2살된 아들 민준이를 키우고 있는데 뱃속에 둘째가 자라고 있다. 4명의 자녀를 낳아 키우는게 목표"라며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학업과 육아를 병행한 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10년만에 고향온 이혜연씨 "문화·낭만의 도시 조성 우리의 몫"

사진=김명선기자

20살이 되던 해에 무작정 해외로 나가싶다는 역마살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을 나섰던 이혜연(36) 카페 메이비 대표. 그녀는 세계를 돌고돌아 10년 후에 다시 제주로 이주했다.

1년간의 해외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그녀는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지난 2005년 귀국해 외국계 방송국에서 송출계약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으로 스카웃됐다. 이후 초고속 승진을 하던 그녀가 느닷없이 귀향을 결정했다.

귀향 결정은 '경쟁에 내몰려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도시의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였다'가 아닌 단순히 '귀향본능'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10년 넘게 제주와 서울·중국·캐나다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지냈는데,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이제는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보자"고 제안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이후 그녀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어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이중섭거리 활성화를 함께 도모하자"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그곳에 카페 메이비를 오픈했다. 그녀의 어머니인 고영의(65)씨는 이 거리에서 40년 가까이 꽃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딸의 가게 바로옆에 '한라꽃방'을 이전했다.

붉은색의 내부와 푸른색의 외벽, 가게 밖 테라스에 있는 카페 메이비의 테이블은 유럽식 분위기로 디자인된 꽃집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이중섭 거리의 명소가 됐고, 외국인과 올레꾼의 입소문을 통해 거리를 대표하는 상가로 자리매김했다. 카페 메이비의 성공사례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고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이되면서 이중섭 거리에 새로 문을 연 카페마다 테라스가 생겨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러나 올해 입주 건물 철거가 예고되면서 그녀의 가게도 2016년에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혜연씨는 "건물 철거 결정에 따라 사기가 많이 떨어진 상태지만 카페를 통해 문화의 거리라는 이중섭 거리의 부흥에 대한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회색톤의 서귀포시를 밝은색의 톤으로 바꾸는데 노력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며 "고향에 이주한 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귀포시를 찾는 이들에게 휴식의 장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진주 출신 이재정·문봉순씨 부부 "제주인의 삶 속에 뛰어 들어라"

이재정(오른쪽)·문봉순씨 부부. 사진=김명선기자

1964년과 1974년에 각각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이재정(50)·문봉순(40)씨 부부. 시간이 흘러 50년과 4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을 부부의 연으로 맺어준 것은 제주였다.

서울에서 신문·잡지사와 온라인 미디어 기자 생활을 했던 남편 이재정씨는 지난 2012년 5월 취재차 제주를 방문한 후 한달 만에 바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에 정착했다. 5월 제주의 아름다움은 그를 제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했고, 헛된 청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이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1년 후인 지난해 6월 23일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닥밧일뤠당에서 진행된 신당기행에서 '운명의 여인'인 문봉순씨를 만나 그해 10월에 결혼했다.

문봉순씨는 지난 2001년부터 제주의 굿을 연구하던 국문학도였다. 제주에서는 육지사람인 그녀가 제주의 굿에 빠져들게 된 것은 한국에서 행해지는 굿 전체가 제주지역 한 곳에 다 모여 있다고 할 정도라고 스케일이 크기 때문이다. 2년전 이주한 이재정씨는 '제주 토박이보다도 제주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동안 제주의 역사·문화·생활상에 대해서 공부해왔다. 현재는 제주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을 제작,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야심찬 계획을 품고 있다.

그의 든든한 후원군이 되어준 이가 바로 문봉순씨. 토착민과 이주민의 경계에 있다는 그녀는 "제주로 이주하려는 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제주인의 삶 속에 뛰어 들어라'이다"라며 "남편이 제주에서 이루고 싶은 일의 결과물에 다가서는 시간을 서울의 아닌 제주의 시간에 맞춰가라고 조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정씨는 "제주에서 창작된 작품이 중앙무대로 진출하지 못하는게 안타깝다. 서울에서의 경험과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이를 실현하고 싶다"며 "최근 세대를 아우른 문화인과 젊은 예술인과의 접촉을 통해 희망을 느끼고 있다. 원도심 재생 등 제주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기획을 펼쳐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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