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수선화와 제주의 봄

[월요논단]수선화와 제주의 봄
  • 입력 : 2015. 02.09(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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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수선화와 봄을 생각하다 보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이상화의 시가 연상이 된다. 꽃봉오리에 눈을 이고도 짙붉게 피었던 동백꽃이 지면, 바로 제주의 수선화가 피기 시작한다. 보통 이월 초가 되어야 피는 수선화지만, 올해는 좀 이른 감이 있는 것일까. 바닷가로는 1월 20일이 지나면서 듬성듬성 피기 시작했다. 다만 어릴 때에는 지천으로 피던 수선화를 지금은 애써 찾아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아쉬움이다.

추사가 제주 유배 중에 남긴 한시에 '수선화'를 소개했었는데, 그 내용을 생각하면서 '제주다움'을 연상해보곤 했었다.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뜨락을 떠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가에 해탈한 신선을 정말 보는구나."라는 전구와 결구의 의미는 오늘날 제주의 문제들을 생각하며 음미해봄직한 말이기에 충분하다. 물론 시 내용을 지배하는 게 유배된 추사의 마음이라 하더라도 제주로 유배 와서 수선화를 고귀한 가치로 인식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추사의 한 편지 내용 중에는 시골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수선화를 귀한 줄 모르고 아무렇게나 호미로 파내어버린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에는 지천으로 수선화가 있었고 제주 사람들에게는 귀찮을 정도로 농사에 방해가 되는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공원이나 화원이 아니고서는 그 흔하던 제주의 수선화를 보기가 쉽지 않다. 지금 꽃대를 올리고 눈이 쌓인 것처럼 지천으로 하얗게 피어 있어야 할 수선화가 제주에서조차 귀한 꽃이 되고 말았다.

2000년대가 되면서 제주 사회는 몹시도 격한 변화를 시도했고 갈망했던 것처럼 보인다. 봄의 계절로 비유됐던 광복 직후의 조급함과 닮았다. 지금까지도 몹시 부지런한 모습들이다. 그러나 '제주의 봄'을 개발, 관광, 외자 유치 그리고 인구의 증가에 기준을 둔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제주도가 홍콩이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하와이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주도의 인구가 60만을 넘어서고 있는데, 곧 70만 100만의 인구를 꿈꾸는 일은 제주도를 대전처럼, 서울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일과 같다. 자연스러운 인구 유입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1%의 인구라고 해서 자굴지심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제주도는 제주도일 수밖에 없고 제주도다워야 한다.

모름지기 계절의 봄이란 만물이 긴 잠에서 깨어나 삶을 왕성하게 향유하기 위한 기지개 정도라고 해도 좋다. 며칠 전 입춘을 맞이했으므로 이제 제주도의 봄을 말해도 좋을 때이다. 그러나 제주의 봄은 지금쯤에서 몽매에서 깨어남이고, 제주다움의 깨달음이라고 하면 안 되겠는가? 비록 추사가 유배의 형벌로 제주로 내려왔었다 하더라도 수선화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제주도다운 것들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가, 프랑스의 니스나 크로아티아의 흐바르 그리고 베트남의 나트랑이나 멕시코의 칸쿤처럼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꾸밀 필요도 없다.

제주도다움을 위해서, 유명한 관광지나 도시를 벤치마킹할 일이 아니라 제주도다움의 세계적 가치를 찾아나가야 할 때이다. 지금 논의가 되고 있는 해녀문화라든가 제주의 돌담 등은 그냥 보존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있는 삶의 형태로, 친근하게 어루만지는 일상의 풍경으로 가치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그런데 봄이 막 피어나는 때에 오름 하나를 축제의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불태우는 일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제주다움을 우리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 아닌가.

머지않은 날, 오늘처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때에 바닷가를 찾아가면 반가운 제주의 수선화가 다소곳이 피어있다면 참 좋겠다. 단지 바닷가에 수선화가 없다고 해서 이 봄이 싸늘한 것만은 아닐 테지만, 어린 시절 '말마농꽃'이라고 불렀던 수선화가 제주의 봄과 함께 한다면 따뜻해질 것만 같다. <좌지수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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