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愛 빠지다] '신당 귀신'조이 로시타노

[제주愛 빠지다] '신당 귀신'조이 로시타노
  • 입력 : 2015. 02.13(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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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의 원어민강사인 조이 로시타노는 제주의 신당 이야기를 접한 뒤 100여개의 신당을 찾아다니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사진=태너(Tanner Jones) 제공

"신당 가기 3일 전부턴 고기도 안먹어요"
원어민강사로 제주와 7년째 인연
신당 사진집·다큐멘터리도 제작

조이 로시타노(Joey Rositano)는 테네시주립대에서 스페인어와 인류학을 함께 전공하느라 남들보다 1년 늦게 졸업했다. 그리고 졸업 후 2주간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만 해도 자신의 역마살을 감지하지 못했다. 스페인에서 1년만 머물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그는 이후 스페인에서 1년을 더해 총 2년, 프랑스에서 2년을 떠돌았다. 이어 2006년 9월 제주도에 첫발을 디딘 그는 7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

 많은 원어민 교사들처럼 외국어학원 강사로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3년 전 제주섬의 신당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인류학을 전공한 그에게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신당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제주시 내도동 본향당을 찾아 80대 할머니로부터 신당신과 문전신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당시 인연을 맺은 내도동 할머니들과는 지금도 왕래하는 사이다. 이후 3년간 제주의 신당 100여개를 방문했다. 제주도에는 "본향엔 비린 거 머겅 가민 부정 탄다"는 속담이 있다. 그 또한 신당에 가기 3일 전부터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그는 제주도 신당 중에서도 상귀리와 와흘, 월정, 와산, 내도, 신천, 오등동 본향당을 특히 명소로 꼽는다. 장소의 분위기가 독특하거나 경치가 아름답거나 그 당에 얽힌 전설과 주민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다. 신당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 지난해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소개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아끼던 오등동 죽성마을의 본향당인 설새밋당에 문제가 생겼다.

 "2013년 12월 설새밋당이 파괴됐어요. 당을 둘러싼 다섯 그루의 팽나무가 톱으로 절단되고, 두 그루의 신목 앞에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도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죠. 당에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의 신앙행위까지 송두리째 파괴시킨 것이나 다름 없었죠."

 내도동 본향당에 매료돼 숱하게 다니던 그는 당시 신목을 전정한 주민이 몇주간 아파서 고생을 했다는 말을 기억해냈다. "본향이 낭근 거실지 아니혼다"는 제주도 속담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만큼 '신당 귀신'이 된 그에게 설새밋당 파괴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설새밋당을 믿는 주민 10여명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더니 한결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 그랬다고 하거나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그랬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경찰 수사도 진행됐다. 그러나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주민들이 신당을 찾는 음력 정월이 다가오는 요즘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외부인인 내가 해야 할 일일까?' 더 이상 깊이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러다 누가 당을 파괴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당을 재건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누구의 소행이건 간에 당을 재건함으로써 이 모든 책임을 지어야 할 당사자들을 향해 던질 수 있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그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글로 풀어내 자신의 블로그에 영어와 한글로 함께 게시했다. 앞으로 신당 사진과 제주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집으로 펴내고,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국내외 다큐멘터리 영화제에도 출품할 계획이다. 제주의 당 중에서도 '센 당'의 의미를 알고, 신당의 문턱을 넘을 때마다 새로운 세상과 접한다는 미국인으로부터 제주의 신당 이야기를 듣는 경험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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