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라 공동목장조합 문서철. 왼쪽부터 승낙서·수납부·회의록·조합가입신청서·조합원각서철. '오라 공동목장조합 문서' 수록 이미지.
[한라일보] 캐비닛 안에 잠들어 있던 문서는 낱장 기준으로 3000매가 넘었다. 더러 곰팡이가 끼어 있었지만 다행히 판독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 문서들이 320여 쪽의 분량의 자료집으로 출간됐다. 제주학연구센터에서 펴낸 '오라 공동목장조합 문서'로 문창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하영 제주대 자유전공 계약교수가 탈초·번역을, 강만익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이 해제·감수를 맡았다.
제주도의 '2025년 주요 농·식품 현황'에 의하면 현재 제주 지역 마을공동목장은 51개소로 조합원은 7530명에 달한다. 전체 목장 면적은 5174㏊로 이 중 76%에 해당하는 3944ha는 사유지다. 2000년대 이후엔 재산세 상승, 주민 고령화, 리조트·골프장 개발로 목장 용지가 매각되면서 제주 전역의 공동목장 운영이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는 제주의 독특한 제도로 꼽히는 공동목장이 형성되고 변화하다가 마무리되는 전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제주 목축 공간의 장기 지속적 구조 변천, 제주4·3 이후 마을 경제 재편, 새마을운동과 축산 정책에 대한 마을 대응을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편찬팀은 승낙서, 회의록, 임야세 영수증 등 성격별로 묶여 있던 기존 문서철의 자료들을 연대별·주제별로 재배열했고 해제, 원문 이미지, 번역 등을 수록했다. 총 59건의 문서 중에서 1930~40년대 자료는 국유림이 개인·마을 소유로 전환되며 공동목장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알려준다. 또한 목장조합 재정 운영 체계, 일제의 조세·행정 체계가 지방 단위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읽을 수 있다. 1950~60년대 문서는 한국전쟁 직후에도 공동목장이 재정비돼 계속 운영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 문서에는 목장조합이 제주시 축산정책·새마을운동·국유림 사용 정책 등 국가·지방 정책과 연결되며 운영되는 양상이 드러난다. 1980~90년대 자료엔 목장조합 정관 개정, 조합원 수 변동, 재산 관리, 조합 자금 대출과 회수 내역 등이 들어 있다.
마지막 기록은 2010년 오라 목장조합 최종 회의록과 결산 자료다. 목장조합이 자산을 정리하고 해산을 결의하는 장면을 담은 것으로 어떤 절차와 논의를 통해 막을 내렸는지 전한다.
이 문서들은 '오라동역사문화지'(2024)의 목축 분야 집필자였던 강만익 특별연구원이 마지막 오라공동목장조합장 박창욱 씨가 소장 중인 자료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박 조합장은 책 말미 '서랍 속에 남겨둔 제주 목장사-소장자의 회고'를 통해 "이 문서들 속에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내고 받은 돈의 내역, 회의에서 오르내린 이야기, 가뭄과 태풍 속에서도 목장을 지키려 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목장 운영, 마을 공동체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편찬팀은 그가 2007년 나리 태풍 때 사무실에 물이 차오르자 캐비닛째 옮기는 등 자료 보존에 애쓴 점을 짚으며 "향후 조합 관계자들의 논의를 거쳐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도내 박물관 등 문서 관리가 가능한 적절한 기관에 인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완병 제주학센터장은 발간사에서 "공동목장은 단지 소를 기르던 장소가 아니라, 나눔과 협동, 그리고 공동체 자치의 원리가 살아 있던 생활 공간이었다"며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개발과 보전,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것도 이 문서들이 전하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비매품. 제주학연구센터 홈페이지에서 전자 파일로 열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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