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문화도시 서귀포, 속이 허한 공간은 그만

[백록담]문화도시 서귀포, 속이 허한 공간은 그만
  • 입력 : 2015. 03.02(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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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문화도시 아닌 곳이 어디있으랴. 발길 닿는 곳에서 빛깔 다른 문화공간을 둘러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얼마전, 알고 지내는 분에게 새해 인사 나선 길에 들른 경북 북부 지역도 다르지 않았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지난해 6월 문을 연 청송군의 객주문학관. 청송 출신인 김주영의 장편 소설 '객주'를 주제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휴양·관광도시를 꿈꾸는 청송군은 이를 시작으로 객주마을, 객주문학길 등을 더해 그 일대를 '객주문학관광테마타운'으로 만들 예정이다.

 영양군은 '문향의 고장'이란 커다란 도로 옆 안내판으로 방문객을 처음 맞았다. '문화마을' 두들마을엔 소설가 이문열이 세운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자리하고 있고 주실마을엔 '승무'의 시인 조지훈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지훈문학관이 일찍이 들어섰다.

 지자체마다 지역 출신 유명 예술가 등을 내세운 문학관, 미술관 등 문화공간 건립에 관심을 갖는 일은 고무적이지만 그보다는 개관 이후가 중요하다. 자치단체장 업적인 양 건물을 지을 게 아니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

 문화공간 숫자를 따진다면 서귀포시는 이미 국내 최고의 문화도시가 되고도 남았다. 잘 알려졌듯, 서귀포시는 제주시를 제치고 '2004-2013 시·군·구별 문화기반시설 비교'에서 전국 2위에 올랐다. 박물관수가 그만큼 많은 점이 작용했지만 10여년전인 2004년에도 서귀포시는 제주시와 공동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문화공간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턱없는 인력으로 공간을 간신히 꾸려가고 있거나 정체성을 찾지 못해 건립 목적에 맞게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이들은 문화시설 하나를 늘리는 일 보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가 공간 운영의 성패를 가늠한다는 걸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6월 오색 테이프를 날리며 개관식을 가진 서귀포예술의전당은 후자보다는 전자에 기울었던 것 같다. 준공 이후 6개월 정도 시범 운영하는 등 시설을 가동하면서 개관 준비에 나서야 했지만 서둘러 문을 열었다. 지난해 4월 제주도지사가 현장을 찾아 "왜 개관이 늦어지고 있느냐"며 공무원들을 질타했다는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하반기로 예정됐던 서귀포예술의전당 개관식은 제주도지사 방문 이후 6월로 그 시기를 앞당겼다.

 지난달 28일,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공무원들이 서복전시관에서 '문화투어데이'를 진행했다. 문화예술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지역에 흩어진 문화재와 문화공간을 제대로 배우고 활성화 방안을 찾자며 시작된 행사였다. 서귀포시는 매월 한차례 문화투어데이를 운영하기로 했다.

 마을의 삶과 동떨어진 채 조형물만 잔뜩 늘어놓은 문화의거리나 속이 허한 문화공간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비를 지원받아 올해부터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벌이는 서귀포시의 공무원들이 한 달에 한 번 문화시설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내실있는 방향을 그려갔으면 싶다.

 소설가 김주영은 객주문학관 개관에 부친 글에서 "지역문학관을 활성화시키려면 휴식, 어울림, 교육, 체험 등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즉, 쓸모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적었다. 오늘도 어느 지역에서 생겨나고 있는 문화시설마다 공통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인지 모른다. <진선희 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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