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제주도의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 오는가

[한라칼럼]제주도의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 오는가
  • 입력 : 2015. 03.31(화)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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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인가. 아니 제주도민에게 아름다운 시절은 있었던가. 외형적으로 제주도는 탐라 이래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변방이었던 섬이 이제는 국내외 관광객 1200만 명을 기록할 정도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섬이 됐다. 국제자유도시이자 특별자치도라는 이름마저 그럴싸하다. 4·3의 비극과 아픔을 뒤로하고 이만한 번영을 이뤄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만하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시절은 프랑스에서 왔다. 프랑스에선 189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이르는 기간을 '아름다운 시절', 즉 '벨 에포크'(belle epoque)라 한다. 혁명과 폭력으로 얼룩진 기나긴 정치적 격동기를 치른 후에 맞이한 시기다. 이 때 그 유명한 에펠탑이 세워지는 등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은 예술적 자유를 만끽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룬 짧지만 강렬했던 시기다. 아름다운 시절은 제1차 세계대전이 시발점이 된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끝이 났지만 지금도 좋은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아름다운 시절은 제주도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탐라시대에는 한반도와 중국 일본과의 틈바구니 속에 부대껴야 했다. 고려, 조선에 편입된 이후는 중앙정부의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특히 20세기는 고난과 고통, 비극의 역사로 점철됐다. 일제 강점기와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섬 전체가 군사기지화 했고, 오늘날까지 전쟁의 상처로 신음하고 있다. 이어진 해방공간에 벌어진 4·3은 평화롭던 공동체를 송두리째 파괴시켜버렸다. 4·3은 이후 수십년동안 제주도민에게는 한이자 고통으로 남아있다.

4·3이 잠시 반짝이던 시기가 있었다. 유족과 도민들의 기나긴 투쟁 끝에 특별법 제정과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채택, 대통령 사과로 이어지면서 억울함과 고통도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해는 4·3위령제가 국가추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이쯤이면 4·3은 이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로, 화해와 상생, 통합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도 좋을 성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건 잠시의 착각이었다.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일부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희생자 재심의를 요구하며 4·3 진실찾기에 대한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은 4·3평화기념관 전시를 중단하라며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하기야 4·3 당시 많은 피해를 안겨준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고 하는 판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래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가지 않겠는가.

청와대는 끝내 희생자 재심의 문제와 대통령의 4·3국가추념식 참석을 연계하면서 불참을 기정사실화 했다. 유족회는 물론 갈등과 대립관계였던 경우회까지 나서 읍소했지만 허사였다. 유족과 도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이 이토록 힘든 일일까. 국가수반이 4·3추념식에 아무런 조건없이 참석할 수 있을 때 제주도는 비로소 아름다운 시절을 맞이하는 길목에 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과 비극을 뛰어넘어 화해와 상생,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은 그만큼 어렵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 오는가. <이윤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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