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통 넘는 사랑의 편지
新미공개 편지 2편 수록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모든 것을 바쳐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예술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오." (1954년 12월의 편지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 내년이면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자 타계한 지 60년이 되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것과 잘못 알려진 것 투성이다. 1971년 조정자의 석사논문이 발표된 이래로 이중섭에 관한 연구서와 평전, 편지를 모은 책이 발간되어 왔지만 대개는 지인들의 기억과 충분하지 못한 자료에 의존해 재구성한 것들이라 부족한 부분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았다. 탄생 100주년을 앞둔 바로 지금이 그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신화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시대를 이끌어간 화가이자 인간으로서 이중섭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밑작업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최근 이중섭의 가슴 벅찬 사랑과 그리움의 이야기를 복원해낸 '이중섭 편지'가 출간됐다. 이 책은 이중섭 연구로 정평이 난 미술평론가인 최석태가 편지들의 순서를 밝혀 바로잡고, 미공개 편지 두편을 새롭게 발굴했으며, 일본어 편지를 양억관이 새로운 감각으로 번역하고, 이중섭의 행로를 따라 편지를 네장으로 나눠 묶어 이중섭의 이야기를 복원해냈다.
이중섭에게 편지는 그의 혼이고 살이었다. 편지에 그린 그림처럼 황소가 끄는 소달구지에 가족을 태워 남쪽나라로 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지 못한 것,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한 것은 이중섭 개인 뿐 아니라 한국의 미술계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화공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예술에 대한 가없는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편지들은 이중섭이 아내 이남덕과 두 아이 그리고 조카와 지인들에게 보낸 것들이지만 대부분 아내에게 보낸 것이다. 서른아홉 통이다. 두 아이에게 보낸 편지까지 합하면 60통을 넘는다.
편지에는 그림엽서, 드로잉, 은박지 그림, 유화 등이 편지 원문과 함께 있다. 이중섭의 삶과 사랑 예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자신을 채찍질하며 예술에 대한 혼을 엿볼 수 있다. 그 역시 화가라는 예술가 이전에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였고 두 아이를 그리워한 아버지였다. 인간미가 물씬 배어난다. 편지 중 한 편을 엿보면 이렇다.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아이들의 생활안정과 대향(이중섭)의 예술완성을 위해 오로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 예쁘고 진실되며 나의 진정한 주인인 남덕 씨, 이 대향을 굳게 믿고 마음 편안히 힘차고 즐거운 미래만을 생각함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오.' 봄날 벚꽃을 보며 이 책을 읽으면 왠지 먹먹해지면서 손편지를 한 장 쓰고 싶어질 지 모른다. 현실문화. 1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