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路 떠나다]문도지오름과 저지곶자왈

[길 路 떠나다]문도지오름과 저지곶자왈
봄날에, 이 봄날에 깊은 숲길을 걷다
  • 입력 : 2015. 04.17(금) 00:00
  •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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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지오름 주변 가까운 곳에는 오름이 없어 제주 서부지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경민기자

주변에 오름없어 서부지역 한눈 조망
말굽형 분화구엔 한가로이 풀뜯는 말
꽃향기·새소리 등 저절로 자연에 취해

봄이 찾아 왔지만 비가 너무 자주 내린다. 한 달에 반은 흐리고 습하다. 옛날 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원래 제주는 봄에 비가 많이 온다고, 이 비가 산과 들에 부슬부슬 내리며 새싹들을 쑥쑥 자라게 해준다고, 그게 바로 '고사리 장마'라고.

고사리 장마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초록옷을 입고 있는 곳이 있다. 초록빛 넓은 들판과 한라산 능선이 만나는 곳. 산간지대도 들판지대도 아닌 이 곳을 제주에서는 중산간이라고 부른다.

그런 중산간의 봄기운을 느끼기 위해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위치한 문도지오름과 저지곶자왈을 찾았다. 문도지오름은 주변 가까운 곳에 오름이 없고 서쪽 저지 곶자왈 가운데 홀로 우뚝 서 있는 오름이다. 주변에 오름이 없는 덕분에 제주 서부지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문도지 오름은 저지 곶자왈과 함께 올레 14-1코스로 조성되면서 올레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한경면 저지리 예술인마을에 있는 방림원 뒤편 마중오름 사이의 농로를 따라 들어간 다음, 마중오름과 라온컨트리클럽 사이로 곧장 남서쪽 방향으로 가면 올레 14-1코스 시작점이 나온다. 거기서 올레표시를 따라 가다 보면 문도지 오름이 나온다.

밀림처럼 펼쳐진 저지곶자왈.

260m 높이의 오름은 죽은 돼지의 모습 같다고 해 문도지(묻은 돝이)로 알려졌는데, 문돗이오름, 문도악(文道岳) 등 여러이름으로 불린다.

오름을 포함해 곶자왈 주변은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경계인 잣성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지금도 말들이 곶자왈과 오름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사람이 걷기 좋은 오름 탐방로는 양옆으로 소나무 숲이다. 하지만 재선충병으로 인해 많이 베어져 있어 소나무 무덤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제법 가파른 경사로를 5분 정도만 오르면 초원으로 된 완만한 경사가 펼쳐진다. 여기서부터는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말똥을 피하면서 가야 한다.

정상에 도착하자 초승달처럼 생긴 등성마루가 남북으로 길게 휘어져 동쪽으로 넓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제주 서부지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름 바로 아래 저지 곶자왈이 밀림처럼 펼쳐져 있으며, 멀리 서쪽에는 수월봉이, 남쪽으로는 산방산이 보인다.

정상 부근에서 경치를 한껏 바라보다 바로 아래 밀림처럼 펼쳐진 저지곶자왈로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문도지오름 탐방로.

한경면에서 시작하는 저지곶자왈은 안덕면 서광리까지 이어져 길이만 9.3km에 달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영화 '타잔'에 나오는 우거진 정글에 와 있는 기분이다. 숲이 울창하고 깊어 대낮에도 초록의 그림자로 어둑어둑해 겁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깊은 숲의 터널을 걸으면서 문득 자연에 취해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고사리 장마를 맞고 고개를 내민 새싹들과 꽃향기, 새소리를 동무삼아 걷다보면 불쑥 다시 살아갈 기운까지 얻는 기분이다.

'봄날에/이 봄날에/살아만 있다면/다시 한 번 실연을 당하고/밤을 세워/벽에 머리를 쥐어박으며/운다 해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시(詩)처럼, 얼마 남지 않은 이 봄날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술이 아닌 자연에 한번 취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곳 문도지오름과 저지곶자왈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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