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겁고 독한 피가 흐르는 스무 살 무렵 일주일이 멀다하고 길을 나섰었다. 가장 자유로웠지만 가장 외롭고 쓸쓸했으며 가장 아름다웠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까닭에 하루에도 수십 번 길을 잃었던, 그래서 '청춘'은 찬란하지만 아픈 시절이다. 주말이면 예외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그 날은 바다를 보러갈 참이었다. 헌데 일이 꼬이고 꼬여 떠나려던 시간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바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몇 번이고 붙잡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을 한탄할수록 바다에 대한 갈망은 증폭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해는 이미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비로소 바다에 도착하니 해는 온전히 자취를 감추고 높은 곳에 초승달만 스산하게 떠있었다. 사방이 어둠으로 깔린 그 곳에 바다는 그 어디에도 없고 공명한 파도 소리만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허탈함에 축 처진 어깨로 바닷가 앞 오랜 여관에 방을 잡은 후 넋 놓고 한참동안 창밖을 바라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보니 바로 앞에 하늘과 맞닿아 있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토록 힘들게 찾아왔던 어제는 보이지도 않더니 거짓말처럼 눈부시게 언제 없었냐는 듯 그곳에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곳에 왔는지에 대한 목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길로 방을 나와 허기진 배에 우유하나를 털어 넣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무척 허무한 여행기일 수 있으나 그 여행이 일상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컸다. 보이진 않았으나 그곳에 있었고 보였으나 그곳을 떠났으니 결국 여행의 목적이 장소에 있지 않음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 이후 지금도 때때로 일상에 지칠 때면 창을 열고 그 때의 '없는 바다'를 떠올린다. 그러면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하다.
여행이 주는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를 수 있다. 휴식이자 힐링이 될 수도 있고, 가족과의 친목이 될 수도 있으며, 도피이자 회피가 될 수도 있다. 대체로 20대의 여행은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원천일 것이며, 30대의 여행은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힘을 비축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며 4·50대의 여행은 쉼을 찾고자 하는 갈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결국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꽉 짜인 일상의 틈새에 불현듯 권태로움이 고개를 들 때, 수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불현듯 외딴섬마냥 외로움이 파고들 때, 다시 시작하는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불쑥 한숨이 섞여 나올 때, 우리는 떠남을 꿈꾼다. 그럴 때면 때로 목적 없이 훌쩍 떠나는 것도 좋다. 떠난다고 해도 그곳 역시 또 다른 삶의 터전이며 돌아갈 일상의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다른 곳에서 자신이 있던 자리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힘든 순간일수록 추억은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듯이 한 발 떠나 돌아보면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생경스러워지며 진짜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떠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여행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없는 바다'를 바라봤기에 가슴 속에 진짜 바다를 품을 수 있었듯이 말이다.
짧은 시간이어도 좋다. 있는 곳을 멀리 벗어나지 않아도 좋다. 떠남을 꿈꾸는 그 순간부터, 설렘이 심장을 간질거리는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의 선물은 받고 있는 것일 테니. 돌아오는 길 다시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미약한 두려움이 엄습하겠지만 이내 또 떠날 날을 기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길 꿈꾸게 될 것이다. <김윤미 서귀포시 귀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