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안녕하십니까](8)이주민과 갈등 어떻게

[제주살이, 안녕하십니까](8)이주민과 갈등 어떻게
"우리도 주민 대다수의 일부"… 이주민 편가르기 없어야
  • 입력 : 2015. 06.04(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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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동부지역에서 벌어진 레미콘 시설 반대집회. 이주민과 원주민의 대립양상으로 알려졌지만 레미콘시설반대위원회는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사진=한라일보 DB

서귀포 모 지역의 레미콘시설 반대시위 과정 부정적 인식 표출
"텃세 없는곳 어디 있나…가치관·문화충돌 변화 계기로"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레미콘,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까." 부슬부슬 비내리는 오후, 마을회관 맞은편에 그렇게 묻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올해초부터 레미콘 시설 추진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이어온 서귀포시 동부 지역 어느 마을의 풍경이다.

▶100일 동안 이어진 반대 시위=레미콘 시설 반대 시위는 지난 5월 26일로 100일을 맞았다. 100일째 시위를 끝내고 서귀포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최대한 주민 의견을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원론적인 수준이었지만 제주도청, 서귀포시청 등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는 등 반대 목소리를 내온 사람들은 100일을 기점으로 일단 대외적인 움직임을 멈춘 상태다. 레미콘 시설 업체는 아직 서귀포시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반대위원회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청정마을'에 레미콘 시설이 들어설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레미콘 비산 먼지와 식수 오염에 따라 기본 건강권을 위협받을 수 있고 감귤 등 농작물 피해, 대형 트럭들의 교통량 증가, 과속질주에 따른 사고 위험, 생존권과 재산권 침해 우려 등을 제기하고 나섰다.

▶"갈등 구도 의도적 발언 아닌가"=이번 일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 구도라고 했다. 마을에 오래도록 터잡고 살아온 주민들은 레미콘 시설에 찬성하고 있는 반면 제주에 정착한지 얼마 안된 이주민들이 반대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마을회관 앞에 걸려있는 레미콘시설 반대 현수막. 이웃한 마을의 주민들도 시설반대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위원회측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반대위원회 관계자는 "표면적으로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실상은 레미콘 시설에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과 이에 반대하는 다수의 마을 주민들이 대립하고 있다"며 "이주민들이 반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런 말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관련 해당 마을회는 레미콘 시설 안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동네에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해야 총회 참석 권한을 주는 등 사실상 이주민을 밀어내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건립 반대 목소리가 레미콘 시설 예정 부지가 있는 마을만이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퍼진 점은 주목된다. 이웃 마을 주민들 역시 레미콘 시설의 유해성을 이유로 업체 앞에서 진행된 반대집회에 참여했다. 이번 일을 이주민과 원주민 대결 양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제주에 대한 공감·열린 자세 필요=2010년 437명이던 제주 순유입 인구는 2014년 1만1112명으로 25배까지 늘어났다. 전국에서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 바로 제주다. 흔히 힐링과 청정의 섬으로 통하는 제주살이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높을 수 있다.

서귀포시 어느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레미콘 시설 반대 시위는 제주땅에 발디딘 이주민들의 그같은 바람이 투영된 사건인지 모른다. 이주민들이 지역주민 동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 환경 유해시설의 부당함을 거론하며 한층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그것이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으로 여겨지더라도 한편으론 지역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라. 텃세의 행태가 제주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지 않나. 마을에 자리잡은 낯모르는 이들에 대한 유다른 시선은 어느 지역에나 있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제주땅에서 생겨나는 가치관이나 문화의 충돌이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에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제주살이 5년째인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마을기업 '제주살래'의 안광희 이사장은 말했다. "이주민들은 거친 땅을 일구며 긴 세월동안 이 땅의 문화를 지켜온 제주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사람들은 밀려드는 이주민의 모습을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제주의 또다른 변화로 인식했으면 한다."

"단순 인구유입 아닌 공동체 의식 필요"

이주민 갈등관리 도정질문에 등장
마을길 재산권 분쟁 등 사례로 제시


제주 이주가 열풍이 된 시대, 제주도의회가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 문제를 다뤘다. 지난 4월 17일 열린 제주도정 질문 자리에서다.

이날 강성균 교육의원은 '육지 것'이 '새 제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원주민과 이주민의 소통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세 가지 질문을 꺼냈다. 강 의원의 질의 내용을 요약해본다.

첫째, 이주민 지원정책 체감도가 미흡해 10명 중 6명이 제주도에서 시행하는 정책의 혜택을 못받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는 체감도가 더 낮다.

둘째,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다툼 중 하나가 토지 분쟁이다. 새마을운동 무렵 동네 사람들이 땅을 내놓아 마을길이나 다른 용도로 이용해온 토지를 두고 이주민들과 지역 주민 사이에 재산권 분쟁이 생겨나고 있다.

서귀포지역 어느 마을의 한마음체육대회.

셋째, 뿌리깊은 공동체 문화속에서 이주민들이 제주인으로 정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전담 부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단순한 인구 유입이 아니라 제주인으로 살아갈 공동체 의식을 키워가는 일이 필요하다.

답변에 나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담당 부서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답변서를 써왔지만 변명하지 않겠다"며 "행정시나 읍면동사무소에 이주민 지원센터가 있지만 제주도민과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주민 정책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한다"는 원 지사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아이디어, 불만 사항을 두루 수렴해나가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토지 분쟁에 대해선 "이주민들이 등기부상에 있는 땅을 찾으려고 하다보니 마을 사람들에게 깍쟁이 같고 야비한 모습으로 비쳐지며 갈등이 속출하고 있는 걸 잘 안다"며 "주민갈등으로 직결되는 점이 있거나 민원이 생기면 우선 순위를 두고 신속하게 해소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구 사례를 토대로 당시 도정질문을 벌였던 강 의원은 "이주민들이 마을회비 3만~5만원을 나몰라라하고 마을 체육대회 등에 참석하지 않아 갈등이 유발된다"며 "이주민을 통해 소규모 학교 통폐합 위기를 벗어나는 등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온전히 제주사람으로 정착하도록 마을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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