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독을 뿜어내기 딱 좋은 나날이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제주의 아침 공원에는 자귀나무가 실눈을 뜨기 시작했다. 붉은 속눈썹 같이 생긴 꽃잎이 옛날 새색시가 살포시 눈을 내리깔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삑' 손전화가 울어댄다. 동창 밴드에서 정치한다는 친구가 메르스에 대한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소리다. '그럼 니가 해' 입속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진다. 이런 대응방식도 남의 피해를 살피지 못하는 '관크(남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 관객 크리티컬)'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터무니없이 높은 목소리로 설파하며 길을 막고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행위. 본인은 민주시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라 하나 삶의 위로를 받고 싶은 상대는 언어폭행을 당하는 심정이다. 사람은 없고 말만 있다.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 울며 날아간다. 미국의 펀드 엘리엇이 우리나라 대기업인 삼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엘리엇은 공중을 배회하다가 약해보이는 먹이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썩은 시체까지 파먹는 독수리와 같은 '벌처펀드'라는 소문이다. 자본주의 맹독 같은 놈들의 소행이야 늘 그러려니 해도 아프리카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원조해주는 돈마저 채무 갚는데 먼저 써야 한다며 지급을 중단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사람은 없고 돈만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 대다수는 아직도 재벌이 한국사회의 핵심 문제라고 생각하고 반(反) 재벌 공동 전선을 형성해 그나마 국제 경쟁력이 있는 재벌그룹을 해체, 헐값에 매각하도록 종용하는 논리가 득세한다. 외국자본의 웃는 표정 뒤에 숨은 발톱을 매번 잊어버린다.
한동안 빛이 보이지 않으니 수련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래선지 개구리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나무 위에 새 소리까지 생생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즐겁다. 아마도 자연에 가까운 것들이라서 그럴 것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별것도 아닌 녀석들의 입김이 폭풍으로 비교할 정도의 수위를 가지고 사회 각 분야에 문제를 야기시켰다. 모든 문제는 '미리보기'와 '다시보기'로 예비해야 대응능력이 진화되는 것이다. 문제는 갈수록 진화하는데 대응능력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어떤 것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며칠 있으면 무궁화가 거리를 장식할 것이다. 백여일을 한결같이 매일 꽃을 피우고 저녁이면 꽃을 지운다. 날마다 새로운 새 생명의 숨결을 토해낸다. 동트는 새벽녘 종종걸음으로 맑은 물을 길어다 아침 밥상을 준비하던 한국여자들의 성향과 빼닮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신실크로드)' 프로젝트가 14억 중국인의 마음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런 공감은 자신들이 왜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인식, 현실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 꿈을 실현할 타당한 전략에서 나온다고 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달에 해상 인프라 확충 차원의 사업으로 '제주 신항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반대하는 목소리도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또 얼마만큼 관련특혜 거품이 사리고 있는 것일까. 종기일까, 꽃망울일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를 만들어낸 서양문명의 중심을 이룬 로마 인프라에는 '사람'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에서 지도자는 항상 이런 관점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했다. 하드 인프라는 '국가 백년대계'가 아니라 '국가 천년대계'를 생각한다. 지금 그대와 사소한 말다툼으로 하오(廈午)의 눈부신 빛을 놓치고 싶지 않다. 무궁화 꽃이 피고 있다. <고춘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