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별을 헤는 밤

[하루를 시작하며] 별을 헤는 밤
  • 입력 : 2015. 06.24(수)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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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시, 소설, 수필, 희곡 등과 같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렇지만 글자로 쓰여진 것이 모두 문학일 수는 없다.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어를 독자적으로 정교하게 다듬고 생명감을 불어넣어 작가가 새로이 생산해 낼 때 비로소 문학으로 승화된다. 때문에 작가의 삶이란 작품에 있어 참으로 중요하다. 독자는 작품 감상을 통하여 지식과 사상을 습득하고 스스로 교훈적 배움을 얻는다. 따라서 문학작품은 내재적 가치나 유명세를 떠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 작가의 영혼이 담긴 작품이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교감창구인 것이다.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 문학관이 생겼다. 종로 누상동에 있었던 소설가 김송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하숙하며 함께 인왕산에 올라 시정(詩情)을 다듬곤 했던 윤 시인의 인연을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귀히 여겨 건립하였다.

오랜 기간 쓸모없이 내버려진 청운동 꼭대기 수도가압장, 이를 재생의 안목으로 접근하여 과거를 압축, 시현한 것이다. 이를 전제한다면 건립보다는 재생이라는 표현이 맞다. 오래전 고지대에 물줄기를 끌어 올리면서 약해지는 물살에 다시 압력을 가해 힘찬 물줄기로 만들어냈던 수도가압장, 그동안 손쉽게 꼭지를 틀어 편하게 물을 사용하던 나로서는 부끄럽게도 가압장의 존재나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딸아이와 함께 찾은 윤동주문학관은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민족시인과의 시대를 초월한 만남과 더불어 점점 빈약해져 가는 내 영혼을 가압하는 진실한 계기가 되었다.

문학관의 핵심 컨셉은 우물이었다. 가압장에 붙어있던 어둡고 음습한 두 개의 물탱크를 하나는 지붕을 걷어내어 열린 중정으로, 다른 하나는 밀폐된 공간에 간신히 빛줄기 하나 들어오는 닫힌 우물로 형상화하였다. 오래전 콘크리트 벽을 따라 끝없이 이어졌을 젊은 시인의 고독과 절망, 굳게 닫힌 공간에 쏟아지는 실낱같은 빛줄기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생명의 끈이었을 것이다. 낡고 오래된 공간의 원형을 보존하려 치열하게 애쓴 고민의 흔적들, 단지 지붕을 걷어내고 벽을 조금 높여준 것이 고작이나 휘황찬란한 현대식 구조물보다 진솔하고 충만하게 윤 시인의 삶과 시대 상황을 내포하고 있었다.

전시를 위한 전시품은 보이지 않고 단 몇 분의 흑백영상물로 보는 이의 심장을 울리는 가슴 저린 공간제안, 굴곡진 시대에 스러져간 젊은 영혼은 반백의 중년을 흔들어댔다. 꽃향기에 빠져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사느냐고, 나이를 구실로 늘어진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건 아니냐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는 이제야 인식한다. 내가 읊었던 한 편의 시가 감미로운 시어(詩語)의 조합이 아니었음을, 나는 이제야 감사한다. 민족자존을 위해 헌신한 호국보훈의 숨은 영령들에, 그리고 나는 이제야 반성한다. 내가 노력했던 국가를 위한 유무형의 실천과 그 진정성에 대하여.

별을 헤다보니, 어느새 보훈의 달 6월이 다 지나간다. <허경자 서귀포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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