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의 역사적·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도시를 되살려내는 도시재생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제는 도시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자라난 유무형의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해 쇠퇴해가던 도시에 다시금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지역 경쟁력을 강화시킨 국내외 사례가 적지 않다. 지역의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본래의 의미나 상징적인 면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스토리텔링을 통해 특성화된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제주섬에서도 지역 곳곳에 숨겨진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스토리를 발굴하고 특화시켜 지역경쟁력을 강화하는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자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공동기획취재 일원으로 선정돼 국내 도시와 이탈리아·오스트리아 도시들을 다녀왔다. 역사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관리하고 이를 도시재생에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2005년 스위스·독일, 2009년 일본의 도시를 통해 배운 것을 재확인할 수 있는 여정이었다.
결론은 도시의 구성원들은 현란한 색채보다는 사유와 시간이 담긴 장소가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도시를 찾고 그 도시가 갖고 있는 '시간의 켜'를 살피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것을 만들어왔던 이들을 만나는 건 더 의미로왔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대구의 골목을 되살린 14년의 과정과 경험을 이야기 해준 권상구 (사)시간과공간연구소 대표의 이야기는 울림이 컸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골목을 걷다가 누군가로부터 "여기가 3대째 약을 파는 곳이야"란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 장소가 주는 의미와 시간여행을 주목한다. 이렇게 대구의 골목을 재발견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 "시간은 공간의 켜를 가진다"는 그의 '기억의 퍼즐맞추기'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리고 또 한사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만났던 건축가 스메타나. 도시개발 담당인 그는 1970년대 쇠락했던 마을을 밀어버리자는 의견에 반대하면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지켜낸 사람이다. 그는 어느새 살아있는 '시대의 증인'이 되어 우리를 맞고 있었다.
기자는 사회가 혹은 그 구성원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그 집단을 변화시켜 나가는가 하는 점에 주목했다. 각 도시들은 다양한 빛깔과 감각으로 다양한 목소리들을 냈지만 한 사회가 그 사회를 변화시켜 가는 데는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이를 동력으로 추진해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의 '도시 재개발'이 기존 공동체를 이뤄 삶을 영위해오던 주민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는 잘못을 범했다면 '도시재생'은 지역민의 삶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자는 것이다. 우리만의 '역사'와 '문화'의 옷을 입고 말이다. 도시는 '직물'이다. 지역자산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각자의 가치를 형성한다.
지금 제주는 원도심에 탐라문화광장을 조성중이다. 옛 코리아극장은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로 탈바꿈했고 옛 제주대병원 인근 빈점포들도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변모했다. 고씨주택과 목욕탕 굴뚝을 보전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보전을 하기로 했다면 이젠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갈까가 관건이다. 하지만 산지천에는 이미 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그 공간을 오갔던 이들의 '시간의 켜'를 들춰보기만 한다면 그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이현숙 교육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