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 길로 떠난 작가, 김영갑

[하루를 시작하며]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 길로 떠난 작가, 김영갑
  • 입력 : 2015. 08.19(수)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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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어 홀로 걸었다. 자유로운 만큼 고통도 따랐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의 어두운 부분도 내 몫이기에 기꺼이 감수했다." -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中

지난 5월 29일은 故김영갑 사진작가가 바람 따라 지상을 홀연히 떠난 지 꼬박 십년이 되는 날이었다. 제주를 사랑한 사진작가, 제주의 자연에 매료되어 제주에 정착하고 30만장이 넘는 사진을 남기고는 42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사진작가. 그의 열정과 정성이 깃든 한라산 자락의 작은 갤러리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명소가 되었다. 한때는 작은 폐교 운동장이었을 마당은 바람과 돌과 사람이 공존하는 아기자기한 정원이 되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을 교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들로 가득 메워졌다.

충남 부여 출신의 김영갑 작가는 1982년 제주의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매혹된다. 그러다 결국 1985년 제주에 정착하여 제주의 수많은 얼굴들을 작은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그의 앵글 안에는 빛에 따라 바람에 따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제주의 다채로운 자연이 담겼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제주사람들의 일상이 담겼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사랑했던 오름……. 해발 200~600m 중산간, 360여개가 넘는 기생화산인 오름은 사시사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영혼을 카메라 앞에 묶어두었다. 그리고 2001년 그에게 찾아 온 루게릭병. 하지만 그는 떨리는 손으로 계속 셔터를 눌렀고, 2002년에는 서귀포 삼달리에 위치한 작은 폐교를 손수 꾸며 한라산 옛 이름을 딴 갤러리 '두모악'을 열었다. 두모악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용눈이 오름과 다랑쉬 오름은 마지막까지 그의 시선이 머물던 곳이다. 그래서 일까.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정지되어 있는 찰나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빛과 바람이 느껴지고 그 모든 실루엣에는 흡사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와 같은 따뜻함이 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제주라는 곳은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며 한 사람이,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곳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황홀한 풍광은 순간에 머물다 사라지듯 사람 역시 망각의 동물이라 익숙함에 잊혀지고 일상속에 파묻히곤 한다.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 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다. (중략)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김영갑

아름다운 곳은 언제든 들통나기 마련이다. 그러하기에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오가고 그 중엔 더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제주정착을 계획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변화하는 제주의 모습이 과연 우리가 원하고 그들이 원하는 제주의 모습인지는 점점 의문스러워진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게 망각의 동물인 사람의 속성이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든. 다만 바라는 것은, 제주가 '자연보다 더 자연스런' 제주의 모습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모습이 '제주다운' 모습인지는 우리 스스로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그가 바람 길로 떠난 지 10년. 제법 바람 끝에 선선함이 느껴지는 늦여름. 그가 사랑한,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제주의 모습을 다시 마음에 새기러 훌쩍 여행가 듯 두모악으로 흘러들어야겠다. <김윤미 서귀포시 귀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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