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복원해야 할 제주문화

[하루를 시작하며] 복원해야 할 제주문화
  • 입력 : 2015. 09.09(수)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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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 집에 제사가 있던 다음날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작은 차롱에 떡과 고기 반을 넣고 동네 집집마다 배달하는 것이다. 눈곱도 채 떼지 못하고 부스스한 채 떡반을 들고 다니는 내게 동네 어른들은 착하다고 칭찬을 해주시곤 했다. 시간이 흘러 대부분 이사를 떠나고 그분들의 사회적 지위가 변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그분들에 대한 기억은 동네의 친근한 아저씨 아주머니이다. 그리고 그분들 역시 나를 아장아장 걷던 작은 꼬마로 기억해주곤 한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남는 감정은 친근함과 따스함이다.

새삼 이런 말을 전하는 이유는 제주사회가 참 많이 삭막해졌기 때문이다. 사소한 주차문제는 물론 쓰레기투기 등으로 이웃과 언쟁을 하고 보복운전을 하는 등 여느 대도시와 다름없는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종 정책과 개발 사업으로 인한 견해차는 동네 사람들을 편 가르며 반목하게 한다. 어쩌다 이렇게 사회 갈등지수가 높은 제주가 되어버린 것일까?

한때 우리는 괸당문화 속에서 송송 뚫린 돌담 구멍만큼이나 서로 간 소통이 잘 되었다. 마을입구의 팽나무 그늘은 온갖 동네이야기가 흘러 다니는 통로가 되고 곡식을 갈던 몰방애는 서로 간 도움을 주며 정을 쌓던 공간들이었다. 그랬기에 그 살벌하던 4·3의 와중에도 동네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던 사례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은 소를 잡아 굶주리는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줬던 일들과 처형된 사람들의 시신을 몰래몰래 토롱해주거나, 그들의 가족에게 인계하는 일등의 미담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괸당문화가 마치 우리 사회의 적폐처럼 치부되는 분위기다. 외지에서 온 이주자들인 경우 더욱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봐주기와 끌어주기가 괸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립된다. 그러나 이는 괸당문화의 왜곡이고 일부의 잘못된 행동이다. '괸당'을 악용하는 사례로 인해 괸당문화가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대신 우리의 문화가 왜 이렇게 변질되어버렸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선 과거에는 소통의 공간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마을의 팽나무와 몰방애 그리고 식수를 떠 나르던 용천수 등이 그렇다. 그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속내를 터놓으며 서로의 사정을 알기에 이해도 쉽다. 그리고 일이 생기면 마을의 큰 어른들이 중재를 한다. 그 분들의 인품만큼 마을의 단합은 잘 된다.

하지만 지금의 제주사회에는 소통의 공간이 없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큰 어른도 없다. 저마다 권력을 향한 암투로 줄서기를 할 뿐이다. 지역의 축제마저도 마을의 화합을 위한 잔치가 되기보다는 보여주기 식 행사가 되다보니 예산다툼만 생기게 된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중 좋은 문화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복원해야 한다.

일례로 요즘은 한 동네에 살아도 서로 얼굴을 잘 모른다. 길에서 싸워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웃간 얼굴을 트고 지내면 얼굴 붉힐 일은 줄어들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사를 처음 왔을 때 조그만 떡이라도 나누는 것이다. 이미 늦었다면 작은 먹거리가 생겼을 때 나누어 보자. 무공해 상추를 키우고 나누거나 과일상자가 들어오면 일부 나누어 먹는 일 등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이웃과 친해지는 법이다.

또한 최근 벌초가 한창이다. 여기에 자녀들을 동반하자. 공부에 방해될까봐 이를 기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반나절에 성적이 변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버릇없음과 나약함에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땀 흘리는 법과 집안에 위계질서가 있음을 배워줘야 한다. 이를 배운 아이들은 적어도 함부로 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조미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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