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한국 무성영화 '변사'의 화려한 부활

[백록담] 한국 무성영화 '변사'의 화려한 부활
  • 입력 : 2015. 10.19(월)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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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스러웠다. 최첨단 과학기술로 버무려진 영화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 흑백무성영화가 재미가 있을지 의문을 가졌던 그 순간이.

제주에서 '맞춤형'으로 재현된 흑백무성영화는 '버라이어트 쇼'보다 재미있었고 '모든 배우의 목소리가 한결 같아서 무슨 몰입이 될까'라고 생각했던 걱정은 부활한 '변사'조희봉의 존재감으로 무너져 내렸다. 17일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소극장에서 선보인 변사공연 '청춘의 십자로'공연을 본 소감이다.

제11회 제주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보인 이 영화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무성영화이다. 1934년 안종화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한국영화가 무성에서 유성으로 넘어가기 전 정점에 이르렀던 조선영화의 기술을 가늠케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원용, 신일선, 김연실 등 1930년대 당시 최고 스타들이 출연해 흥행에도 성공한 기록이 있다. 영화는 2007년 한국영상자료원이 국내에서 발굴, 복원했으며 2012년 2월 정식 문화재로 등록됐다. 그 당시 영화연출은 대부분 일본인이었지만 이 영화는 100% 조선 영화인들이 만든 작품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변사(辯士). 한때는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 직업이었다. 영화 상영이 있기 전 먼저 영화 상영의 전체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주었다. 그리고 영화 상영이 시작되면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영화의 내용을 설명해주고 관객의 영화 이해와 감상을 돕는 무성영화의 해설자였다.

'청춘의 십자로'는 2008년 공연으로 첫 선을 보인 이후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와 뉴욕 멕시코 런던 베를린 브리스번 등 해외 각지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고 있다. 김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한번 하고 끝날 줄 알았던 공연이 오래 가고 있는 것"이다. 오래 가는 것 만이 아니라 한국의 무성영화와 변사의 부활을 예감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른 무성영화들도 재해석되어 공연되는 프로젝트가 이뤄지고 있다.

제주공연은 배우 조희봉의 변사 해설, 밴드 연주, 배우의 공연 등 무성영화 시대 상영 방식을 재연한 현대적 감각의 복합공연으로 재탄생해 관객들을 만났다. 조희봉은 상영시간 내내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 능청스러운 말솜씨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대본작업부터 감독과 함께 함으로써 7년동안 성장해온 창작의 파트너였던 셈이다. 필름을 보다가 '오빠'라는 입모양을 보고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후일담도 재밌다. 그건 대본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렵고 흥미로운 작업이었을지 모른다. 이렇게 이 작품은 옛 무성영화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혀 탄생했다.

여기에 뮤지컬 배우 조휘·임문희가 영화 속 주인공으로 분장해 연기를 선보이고 이진욱 음악감독이 함께 무성영화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무성영화, 연기, 노래와 연주가 함께 어울린 공연에 빠져들었다. 모두의 노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이들은 "작지만 의미있고 아름다운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함께할 수 있어 영광스럽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감독·출연진·관객 모두 만족도 높은 공연이었다.

제주에는 마지막까지 무성영화가 상영됐다는 기록이 있는 옛 현대극장이 남아있다. 이 공간을 더 소중하게 일깨우는 시간일지 모른다. 이들은 이 프로젝트가 상업적 성공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한국무성영화'의 부활을 향한 날갯짓은 시작됐다. <이현숙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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