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62)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62)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
끈끈한 ‘情’에 고귀한 ‘정신문화’가 녹아있는 삼별초 마을
  • 입력 : 2015. 10.27(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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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리 가는 길에서 바다방향으로 바라 본 밭과 마을의 모습(위)과 가문동 해안도로에서 본 하귀2리 전경(아래).

땅은 비옥하고 바다는 천혜의 환경 갖춘 반농반어 마을
바다에 설치된 ‘원담’은 기득권 없는 주민 결속력 상징
한국민속예술축제서 전국 유일 대통령상 2회 수상 영예
주민 "민속공연 보여줄 수 있는 공연장 절실" 이구동성

천년 전 제주에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은 생활환경을 찾을 수 있었을까? 소왕천과 고성천 사이에 있어서 땅은 비옥하고, 지형이 독특하여 물 빠짐도 좋다. 바닷가는 육지 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배를 대기에 용이하니 천혜의 포구를 보유 할 수 있다. 김통정이 이끌고 들어온 삼별초가 그래도 번창한 지역을 기반으로 똬리를 틀고자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고 보면 귀일현을 택했으리라. 인근에 항파두리 토성을 쌓을 인력도 필요 했고. 천년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거북마을 하귀2리는 마을 결속력의 상징이다. 동쪽으로 하귀1리와 남쪽으로 상귀리, 서남쪽으로 수산리, 서쪽으로 구엄리가 접해 있다. 자연마을 5개동이 합쳐져 이뤄진 마을로서 모체인 미수동을 비롯하여 가문동, 학원동, 답동, 번대동이 있다. 김경출(70) 마을회 고문이 설명하는 설촌의 역사는 이렇다. 하귀라는 마을 명칭의 연원을 입니물(일미샘)을 기반으로 일어난 미수동을 옛날에 구리(龜里)라고 했다. 지세가 거북이의 등을 닮아서 붙인 이름. 지금도 섯작지 인근 기암괴석들 중에 거북이 형상을 한 돌이 있다. 용두암 형상석 못지않게 그 모습이 거북이를 연상시킨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종합하면 하귀2리는 옛 귀일촌의 설촌 중심 마을로서 길게는 탐라 전기 지석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22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지역.

올해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의 배경인 아끈코지원담.

정주 여건이 도시지역 못지않게 시설되어 있어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는 도농복합형 반농반어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 생산물은 브로콜리, 쪽파, 양파, 양배추, 보리, 부추 등 밭작물이 대부분이다. 예로부터 비옥한 토질을 가지고 농업생산성이 뛰어나다보니 밭농사와 관련된 문화가 여타 지역에 비해 발전하였다. 그런 토대 위에 무형의 문화 자산이 익어갔다. 거북 등처럼 생긴 너른 농경지 위에서 일의 고단함을 함께 부르는 노동요로 달래던 사람들. 그 전통을 문화자산으로 이끌어냈다. 2005년 제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귀리 겉보리 농사일소리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결속력이 없이는 연습에 연습을 더하여 발생하는 호흡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귀리 겉보리 농사일소리는 제주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그 뒤로 마을 주민들이 전수관을 지을 땅을 내놔서 마을회관 동쪽에 이 소중한 소리를 후세에 전할 건물을 지었다. 마을 정체성은 보유한 문화발굴에 있음을 자각하여 실천하는 사람들. 문화적 자산이 얼마나 부가가치가 높은 것인지 하귀2리는 증명해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는 더 큰 경사가 있었다. 같은 전국대회에서 다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번 아이템은 바다문화. '가문동 아끈코지원담' 역시 가문동 바닷가에 두터운 밭담처럼 가두리(원)를 축조하는 일을 뜻한다. 마을사람들이 모두가 나서서 이룩한 해변 어로 장치이기에 그 곳에 들어온 모든 고기는 또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잡아간다. 기득권자를 용납하지 않는 제주의 정신문화공동체를 표현하기에는 '원담'보다 더 한 곳이 없다. 아끈코지 그 원담을 찾았다. 이 곳 저 곳에서 환희의 함성이 들리는 듯 하다. "멜들었저~! 저덜 나오랑 멜 거리라~!" 멸치가 원담 안에 가득 들어온 새벽,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모두에게 알려줘야 하는 불문율이 더욱 더 아름답던 공동소유의 터전이 남아있다. 전국에 마을이 수천개가 넘을 것이다. 민속경연 분야에서 대통령상을 2회 수상한 마을은 없다고 한다. 대단한 마을 결속력이다. 자긍심 또한 엄청나다. 마을 일은 집안 일 보다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없이는 불가능한 위업이기에 하귀2리에 제주의 정신문화가 살아 있는 것이다.

홍석지 이장

이러한 정신문화를 이끌어 온 마을 어르신들에게 홍석지(56) 이장은 "참으로 죄송하다. 250명이나 사용하는 노인복지시설 규모가 30평 정도라서. 2300명 인구에 비해서 노인회관이 너무 협소한 것이 사실이기에 행정에서 관심을 가지고 노인회관을 규모 있게 지었으면 한다"며 규모가 큰 마을이라서 오히려 역차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강영철(59) 개발위원장을 비롯하여 마을 임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염원이 있었다. "관광객들에게 전국적으로 수준을 인정 받은 민속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공연장 건설이 절실하다. 지금 있는 전수관은 말 그대로 소리전수관이다. 공연의 형태를 연습하고 전수시킬 수 있는 공연장이 없이는 명맥을 이어가기 힘들다." 제주의 정체성을 마을 단위에서 자발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겠다는 포부에 행정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태라면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겠다는 생각을 누가 하겠냐?'는 따짐으로 들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이 부지를 기증해 건립한 귀리겉보리농사일소리 전수관.

이영아(57) 부녀회장이 제시하는 알토란같은 꿈이 있었다. 보리로 유명한 마을이기에 보리를 민속문화 상품으로 만들었으니 거기에 보리로 만든 모든 제품을 살 수 있는 '보리센터'를 만들어서 부녀회원들과 지역주민들이 참여하여 제품생산과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미 조직적으로 이를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귀리 겉보리 농사일소리'와 결합하여 독특한 하귀2리 브랜드로 키워갈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귀2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힘은 마을주민들의 결속력이기에 행정에서 길을 열어준다면 더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도 남을 것.

소왕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는 아름다운 자갈밭인 섯작지.

고성호(40) 청년회장이 70세가 되는 해는 2045년이다. 하귀2리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대답은 간명했다. "또 하나의 읍 이상으로 인구와 경제규모가 발전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창우(50) 미수동장이 주장하는 상업지구를 위한 도로개설이 필수적이다, 가문동 지역에서부터 시작되는 해안도로와 벨트를 이루는 정신문화와 지역경제가 부강한 마을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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