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친절이 답이다." 여기서 평등은 인격의 평등을 뜻한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아무런 구별이나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인류는 종족적으로 여러 차이가 있다. 피부색이 다른가 하면, 키가 크거나 매우 작은 인종도 있다. 또 문화적으로도 고도의 물질적 문명을 창조해 높은 문화생활을 하는 민족도 있고, 아직도 원시적인 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종족도 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인종 또는 민족적으로 차이가 있고, 육체적 특성·심성적으로도 구별돼 자칫 인간이 평등하다는 명제는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피부색이나 신체의 강약 또는 기타 어떠한 차이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인종간의 차이나 특징은 인종 간 정체성을 구별하고,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의 차이는 그 민족의 고유한 전통이나 문화로서 크게 존중되기까지 한다. 그래서 모든 차이에도 인간이 평등하다는 이념은 인간이 인간된 자격과 지위, 권리 즉 법적·도덕적 인격에 있어서 아무런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특히 개인이 겪는 많은 문제들 대부분은 사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즉 내가 사회 안에서 어디쯤 위치하느냐 하는 지위에 대한 인식이 나의 자존감과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불평등함은 무엇인가. 바로 '친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친절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대하는 태도가)정성스럽고 정다움, 또는 그러한 태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친(親)절(切)은 만원버스에서 비틀거리는 할머니 손을 잡아 주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괴테는 이를 '사회를 결속시키는 금(金)사슬'에 비유했다. 그만큼 친절이 값진 덕목이란 뜻이다.
우리는 친절을 기대하던 곳에서 종종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아주 사소하게 일어나는 것 중 하나가 급하게 나오느라 옷차림이 허술하다거나 나이가 그 장소와 맞지 않으면 바로 평등함이 깨지면서 친절의 정도를 달리하는 행색스캔형 직원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눈치를 보며 옷을 입어보거나 식사의 메뉴를 선택하는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
미국 서부의 명문대학 스탠포드 대학의 설립스토리를 보면 더 이해하기 쉽다. 허름한 옷을 입은 노부부가 하버드를 1년 정도 다닌 아들을 위해 대학 총장을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총장 비서는 그런 복장을 입고 온 사람들은 뭔가 아쉬운 부탁을 한다고 생각해 불친절하게 대응했다. 노부부는 불쾌감을 느꼈고 하버드대학에 고액 기부를 포기하고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했다.
이렇듯 인간이 살아가면서 평등하지 않은 태도로 감정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또 평등한 친절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가. 우리는 평등한 친절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친절은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만들며 사람을 감동시키고 자신을 존중받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의 친절이 어떤 친절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상대를 우습게 보는 태도가 없는지, 상대의 자리때문에 과잉 친절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친절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타인에게 친절해야 하며 그 친절은 마음의 여유에서 나와 복잡한 계산이 없고, 평등함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지난주에 방문했던 시청에서 직원이 비슷한 내용을 많은 민원인들에게 한결같이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제주가 바뀌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김봉희 제주한라대학교 사회복지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