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산방산이 보이는 감산리 풍경(위), 마을회관 옥상에서 한라산과 군산 방향으로 바라본 마을 전경(아래)
'곰뫼' 신산오름 부르는 옛 이름으로 마을 명칭 유래 안덕계곡, 원시림으로 가치 높아 천연기념물 지정 주민들 "계곡 하천변 활용 가능한 땅 1500평 방치돼 마을공동체 소득사업 펼칠 수 있도록 행정지원 절실"
'곰뫼'는 감산리와 창천리의 경계에 있는 신산오름을 부르는 옛 이름이다. 여기에서 마을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곰'은 '검'과 같이 신령스러움을 뜻하는 고대어라고 하였으니 '신령스러운 산'이 된다. 곰뫼를 한자음으로 쓴 것이 감산이 되었다는 것. 이 산 기슭에 신당을 차려놓고 소원을 빌었다고 하니 신성한 산 아래 자연의 신비 가득한 마을이 분명하다.
김유헌(78) 노인회장이 설명하는 설촌의 역사는 대략 700년 전으로 보고 있었다. "안덕계곡에 있는 바위 그늘집이나 고인돌 등으로 보면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전 일이지만 류씨와 고씨가 통물동네에 통물 인근에 정착하면서 차츰 마을이 번창하였다고 전합니다. 출중한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향약 규율이 엄격했던 양촌이었지요. 뛰어난 지식인들이 많았고 안덕의 중심지였습니다. 원래는 면사무소와 경찰지서가 우리 감산리에 있었습니다."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냇가라는 안덕계곡이 감산리를 지난다.
386가구 877명이 살고 있는 마을 안내표지판에 '감산계곡마을'이라고 적혀져 있다. 그만큼 안덕계곡에 대한 주민들의 자긍심과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덕계곡은 군산(軍山) 북사면에서부터 월라봉(月羅峰) 서사면을 절단하여 이루어진 깊은 계곡으로 해안하구에 이르기까지 상시 하천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조면암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양안은 기암절벽으로 병풍과 같고, 계곡의 밑바닥은 평평한 암반으로 깔려 있으며 그 위를 맑은 물이 항상 흘러서 관광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이 계곡의 양측에는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가시나무류 등 난대수림의 고목으로 울창하게 덮여 있으며, 남오미자, 바람등칡, 백량금 등이 하층식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 계곡에는 솔잎란, 소사나무, 지네발란, 육박나무 등의 희귀식물과 담팔수와 상사화 등이 자생할 뿐만 아니라 보존이 잘 되어있는 난대림의 원시림으로 가치가 높아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3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며 특히 양치식물이 많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안덕계곡 하류에서 바다와 만나는 '황개창'부터 대평리 방면 '당캐'까지가 감산리 소유 바다. 바닷가 인접한 서쪽에는 넓은 논이 있었고, 남쪽에는 월라봉의 끝자락인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다. 논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남제주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월라봉 남쪽에 바다와 만나는 웅장한 절벽이 있는데, 그 아래쪽 바닷가를 '박수'라고 한다. 월라봉 가는 농로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제주의 지형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산비탈 농경지가 많다. 유난히 자주 만나는 속칭 탈탈이 트럭들은 비탈진 농토에 필수적인 농기계요 운반수단. 월라봉 정상부근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군산에서의 느낌과 확연하게 다르다. 박수기정 방면으로 시선이 달려가다 바다로 날아오를 것 같고 멀리 산방산과 화순해수욕장으로 이어지면서 절경을 이룬다.
강석종 이장
강석종(60) 이장이 밝히는 당면 과제와 숙원 사업들은 이렇다. "감산리 계곡 하천변에 활용 가능한 땅이 1500평 정도가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여 마을공동체가 나서서 소득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행정지원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마을공동목장 19만 평 안에 2만평 정도가 석산개발 용도로 활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내년 4월이면 계약기간이 끝나는데 이를 활용하여 재활용시설공장과 같은 사업을 유치하고자 논의 중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행정기관과 함께 고민하고 발전전략을 짜야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부가가치 높은 마을사업을 그 곳에서 창출하고 싶은 주민들의 욕구가 그 것입니다." 많은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여 주민들의 농외소득은 물론 관광산업과 연계된 일자리 만들기가 행정의 무관심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취지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마을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행정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산리 안덕계곡을 지형적으로 만들어내는 월라봉의 봄.
고정옥(51) 부녀회장은 "당장은 어렵지만 조금 멀리 내다보고 농업여성들이 건강과 복지에 필요한 시설들이 있어야 마을발전에 실질적인 동력이 제공될 것입니다." 농촌에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는 지 직접적인 화법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마을 발전전략과 관련하여 지속적인 논의의 중심에는 토지 활용 방안이 핵심과제였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시대정신에 맞고 경제적 타당성에 적합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현실. 안덕계곡이 유로관광지이던 시절에는 관리가 잘되는 편이었다고 한다. 무료 관광지로 바뀌고 나서는 갑자기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느낌을 받고 있다는 취지의 불만이 지역원로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극복 방안은 유료화라고 했다.
김유헌 노인회장의 주장은 옳다. "행정에서 인력이 없으면 마을회에서 유료화하여 환경정비에서부터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까지 마을에 일임하여 뒤에서 지원하게 된다면 주민들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 아닙니까?" 방치에 가까운 안덕계곡 문제를 그대로 두고 감산리의 밝은 미래는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설촌의 발원지이며 주민들의 자존심인 통물.
류 현(40) 청년회장에게 30년 뒤 감산리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전국에서 최초로 '관 의존도 제로' 마을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을이 가지고 있는 자연자원 못지않게 인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민이 지닌 묵시적 한계를 가장 먼저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경탄했다. 행정 지원에 의존하는 발전 모델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각성과 비전, 혜안이 빛나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