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83)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83)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반세기 피고진 연분홍 벚꽃길 따라 삼별초 대몽항쟁 역사
  • 입력 : 2016. 04.19(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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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동쪽 높은 언덕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장전리 전경(위)과 장전초등학교 남쪽 건나물 부근 높은 지대에서 바라본 전경(아래).

군사훈련 역장에게 지급된 토지 명칭서 지명 유래
역사적 자원 스토리텔링 말타고 활쏘는 체험 구상
"마을 안길 막다른 골목들 다른 도로와 연결됐으면"



'오모록'이라는 제주어 표현이 있다. 분지 지역까지는 아니지만 주변 지대가 높아서 중심부가 조금 낮은 평지를 이르게 될 때 쓴다. 장전리의 마을 지형이 그렇다. 동쪽은 고성, 서쪽은 상가리, 북쪽은 수산리, 남쪽은 소길리가 둘러친 마을. 다른 마을로 넘어가는 주변이 높아서 상대적으로 장전리 마을 중심부는 낮아 보인다. 이러한 땅의 형세를 장점으로 간파한 것은 김통정이 이끄는 삼별초였다고 한다. 장전리(長田里)라는 지명은 역사적으로 군사훈련장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마을 원로들의 공통된 견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렇다. 장전(長田)의 '장(長)'자(字)를 대부분 사람들은 길다는 뜻으로만 해석하고, '전(田)'자를 경작하는 밭으로만 해석해 '진밭''긴밭' 등의 말로 우스개처럼 풀이하는 넌센스를 우리들은 많이 들어왔다. 장전(長田)의 장(長)자는 길다는 뜻 외에 우두머리 장(長)자로 가정에서, 기관에서 제일 높은 분이란 뜻을 갖고 있다. '전(田)'자는 경작지인 밭이라는 뜻 외에 시골이란 뜻으로도 풀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장전(長田)이란 의미의 바른 해석은 장전일대를 군사훈련 장소의 책임자인 역장(驛長)에게 지급된 토지의 명칭에 연유해 유래된 것으로 장군으로부터 하사(下賜)받은 자랑스러운 이름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삼별초의 군사 훈련장이었다는 사장밭은 장전초등학교 교정이 되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지명이 있다. 사장밭이다. 사장(射場)밭이란 활터를 일컫는 말이다. 현재 장전에 위치한 사장밭은 동·서 길이 300m, 남·북 길이 200m나 되는 넓은 들판이다. 이 밭이 사장(射長)밭으로 웃어른들에 의해 지금까지 구전(口傳)해 오는 말과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서도 삼별초 대몽항쟁 이전인 700년 전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별초군이 토성을 쌓던 당시에 정착민들이 끌려가 노역을 하던 모습을 조상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있었다. 양성호(66) 개발위원장이 어린 시절 할머니들이 들려준 전설은 "사람이 변을 보고 돌아서면 누군가 주워 먹어버렸다"고 했단다. 장전리에 촌락이 형성된 후로 이 사장밭은 개인 소유화 되었다. 당시 장전리 청년회에서는 이 밭이 역사적인 밭임을 감안해 공금으로 일괄 구입하고 공공의 장소로 활용해 오다가 장전리에 교육기관 설립의 필요성을 느껴 마을에 기증, 1946년경 국가에 기부 채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장전리에서는 1946년 8월 21일 장전공립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고 배움의 터전으로 활용중 1948년 11월 4·3사건으로 인하여 국가의 소개령에 따라 장전 마을이 소개되자 장전 마을과 함께 학교도 전부 전소되었다. 그 후 장전리가 재건됨에 따라 1950년 5월 25일 장전국민학교로 재인가를 받아 지금까지 2세 초등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수가 75명 정도로 줄어서 분교 위기에 처해 있다가 지금은 150명이 넘는 초등학생이 꿈을 키우고 있다. 마을 인구에 비하면 큰 규모다.

벚꽃터널이 이어진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3월말에서 4월 초순에 장전리는 멋들어진 벚꽃 터널길이 생긴다. 수령이 50년 가까이 되는 벚나무들이 길 중앙 하늘에서 서로 만나 눈부시게 화려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것이다. 장전리청년회가 애월읍연합청년회원들과 함께 올해 벚꽃축제를 열었다. 성황이었다. 강경남(45) 전 청년회장은 "예산이 마련된다면 마을 안길과 대도로변 전체에 벚나무를 심어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 마을로 변모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규모면에서 전국적인 도전장을 내겠다는 포부에 감탄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행정기관에서 쓰는 용어는 이런 경우에 장전리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는 궁금증과 함께.

강성효 이장

강성효(66) 이장이 밝히는 숙원 사업은 이렇다. "2005년부터 지속적으로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된 저희 마을은 마을 안길들 중에 막다른 골목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곳들을 뚫어서 다른 도로와 연결되게 만드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특히 신설된 중산간 도로가 마을을 지나가지만 벚꽃길 서쪽 지역 옛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차선 흐름이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멀리 돌아가야 하는 형편입니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불편을 느끼고 마을 발전에도 지장을 줄 것입니다." 도로 설계 단계에서 마을 주민들과 합리적인 협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인 효율성만을 강조한 결과가 이런 현실을 만들었다고 주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양성호 개발위원장은 마을 발전을 위해 장기적으로 독특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소길리, 유수암리와 함께 녹고메 권역사업으로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만 우리 장전리의 역사성을 기반으로 체험관광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대몽항쟁 당시의 군사훈련장이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당시 의상을 입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즐기는 시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명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자원으로 이끌어내는 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요소요소에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지명들도 많고 하니 마을 전체를 하나의 역사 체험 코스로 개발해야 합니다."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별장형 주택들이 많지만 총체적으로 먼 미래를 바라보며 마을이 가진 역사를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하여 구체적인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키자는 주장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수산천이 마을 풍광에 깊이를 더한다.

수산리에서 윗마을 장전리로 시집온 지 37년이 된다는 양정출(59) 부녀회장이 꿈꾸는 미래는 단순명쾌하다. "아이를 많이 낳아도 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마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구가 말해주는 마을 모습이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327가구 764명이 살고 있는 마을에 젊은 부부들이 마을공동체 수익으로 혜택을 받으며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다면 외부 유입 인구요인을 뛰어넘는 새로운 농촌현실이 마련되리라는 꿈. 이를 현실이 되게 하는 것은 장전리 주민들의 몫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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