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84)제주시 한경면 산양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84)제주시 한경면 산양리
수십만 평 곶자왈서 발원한 생명 에너지 마을 곳곳에
  • 입력 : 2016. 04.26(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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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이 무려 22만 평에 달하는 산양 곶자왈(위).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보면 왼쪽 금악에서 오른쪽 끝 모슬봉에 이르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아래).

4·3당시 무장대 은거하던 방대한 숲지대 한수기곶
연화동·수룡동·월광동 세 동네 합쳐져 마을 형성
일찍이 청수리서 분리됐지만 지번엔 산양리 없어



한경면 맨 남쪽 중산간 마을,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만나는 경계에 있다. 새신오름에 올라 바라보면 서부지역 전체 풍광이 들어온다. 참으로 놀라운 경관적 가치가 느껴지는 새신오름에서 산양곶자왈을 바라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한수기곶, 이곳을 모르고 산양리를 알지 못한다. 4·3유적지로 알려진 한수기곶을 통해 산양리의 원초적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대정읍, 안덕면, 한경면 3개 읍면을 끼고 있는 방대한 숲지대. 4·3 초기에 한림면과 대정면의 무장대가 은거 했던 곳이다. 곶자왈 숲이 요새의 기능을 충분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런 판단을 했다면 조상 대대로 산양곶자왈 일대는 내부가 험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어느 곶자왈보다 용암이 많아서 크고 작은 바위들이 구릉을 이루고 함몰지가 많아 지형적으로 특이한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곶자왈 내부 사정을 모르는 자는 범접하기 힘들었을 터. 아픈 역사 또한 곶자왈 속에 세월 따라 덮여 있다. 산양곶자왈을 마을 주민들은 '큰엉곶'이라고 부른다. '엉'이라는 제주어는 큰 암반이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 그늘집 형태를 이르는 말이거니와 이곳에 마을원로들이 설명하는 '일곱모작굴'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져 있다. 큰엉곶 인근 척박한 지역을 일구어 농경지를 확보하고서 주거 공간을 만들어갔던 강인함이 느껴진다. 개척자들의 마을이다. 곶자왈과 사람들이 공존 공생하는 마을답게 친자연적 의식이 투철하다.

마을회관 옆 여뀌못 습지를 기반으로 산양리가 설촌돼 번창했다.

연화동, 수룡동, 월광동 동네 세 곳이 합쳐져 산양리를 이루고 있다. 박성희(82) 노인회장이 설명하는 동네별 설촌 유래가 정겹다. 연화동은 여뀌라는 풀이 자라서 여뀌못이라 부르던 연못에 연꽃이 많이 자생하여 명명하게 된 것이며, 수룡동은 맑은 물에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하여 이름이 유래 되었고, 월광동은 처음에 화전동으로 부르다가 4·3 이후에 이렇게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숲은 생명력의 발원지라고 했던가? 22만 평 상당의 곶자왈에서 발원한 자연에너지가 마을 가득 충만해 있는 분위기다. 봄비 내리는 날, 마을 들판과 농로를 가다보면 야릇한 신비감을 맛보게 된다. 흙과 비 사이에 식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살고 있다는 철딱서니 없는 상념도 밀려오고. 산양리의 역사는 원래 청수리에 속해 있다가 1914년 3월에 본동, 지거흘, 너버흘, 멜덴밭, 빌레왓을 청수1구로 하고 청수2구는 연화동, 수룡동, 자록동, 따리왓동, 파동 등을 합하여 구분하였다. 그러다가 1956년 청수1구는 청수리로, 청수2구는 산양리로 분리되어 현대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마을 명칭과 함께 지번도 새롭게 구분 지어야 할 행정에서 그냥 방치한 결과 지적도에 산양리라는 지번이 없다. 토지대장에는 청수, 낙천, 무릉, 조수 번지가 그대로여서 마을 주민들이 겪는 애로사항이 엄청나다고 한다. 두 세대가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지적행정은 오직 '해당 마을 주민 간 합의사항'으로 떠넘기는 복지부동의 전형이라 분개하고 있었다. 적극적인 행정 노력이 있어야 한다. 생활 터전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여건은 여뀌못, 자록물과 같은 연못 습지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한다. 자록은 사슴의 옛말. 산양곶자왈 남서쪽에 위치한 연못에 한라산에서 사슴이 내려와 물을 마시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 자록물이다. 신양리 마을회관을 비롯한 일대가 원래 여뀌못 습지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일어나 번창한 마을이다.

김문혁 이장

김문혁(57) 이장은 당면 과제를 이렇게 밝혔다. "곶자왈 산책로 사업이 매해 찔끔 예산만 배정받다 보니 진척이 되지 않아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속하게 성과를 내서 마을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행정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서부권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많은 마을입니다. 권역사업과 베스트마을사업 등을 통하여 주민들의 6차산업 마인드가 강화되어 있어서 의욕이 넘치지만 현실은 이를 뒤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서부권 발전 정책을 짜야 하는 행정의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마을임에는 틀림없다.

나지막하지만 서부권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새신오름.

강원철(45) 청년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농촌에 들어와 살 수 있는 일자리 마련을 위해서라면 마을공동체가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들어와 살고 싶은, 그런 여건이 마련된 산양리를 위하여 결국은 관광산업과 농업이 만나야 합니다. 산양곶자왈을 활용한 레일바이크 사업을 하게 된다면 그 수익으로 마을 어르신들을 더 잘 모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제주 마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아픔이지만 30평 정도 비좁은 노인회관을 증축해드리지 못하는 아들 세대의 죄송함이 숨어 있었다. 유영철(46) 개발위원장의 말이다. "자녀들이 묻습니다. 왜 우리 마을 이름이 산양리라고 하는데 지적도에는 다른 마을들 이름으로 되어있어요? 아비로서 부끄러워 할 말이 없습니다. 마을 발전도 이러한 자긍심과 관련된 일을 확고하게 매듭지어야 날개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양리 지번을 가질 수 있도록 행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재도 하고 확정적인 목표를 현실화 시켜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세대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마을 자존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산양리 마을의 집집마다 문패가 이채롭다.

산양초등학교 옛 교정에 공방이 들어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가가호호에 문패들이 이색적이다. 친자연적인 넝쿨 이미지를 담고 있는 모습에 뭔가 다름을 추구하는 산양리 주민들의 의식이 녹아 있다. 한경에서 산양고개 넘어 대정으로 가는 느낌을 주는 마을이기에 필자가 느낀 가장 부가가치 높은 산양리의 자산은 새신오름에서 바라보는 풍광이었다. 주민들도 확신하고 있었다. 산양리가 관광 필수코스가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공공미술가><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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