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예의 정체성은 추사(秋史)와 소암(素菴)을 통해 발현되었다. 제주의 풍토가 추사와 소암을 있게 했다면 제주는 충분히 예향(藝鄕)이다. 그러나 과연 제주의 서예가 추사와 소암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제주의 서예도 한문서예 중심에서 지금은 한글, 전각, 문인화, 서각 등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었다. 한글서예는 다시 서예 제도권 밖의 캘리(Calligraphy에서 따온 말)라는 새로운 경향에 도전을 받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서예의 분화과정인 셈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서예의 심층구조를 단단히 하기보다는 수평 하향적으로 몸집만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다.
현대에 와서 예술의 대중화는 순수를 위축시키는 역작용을 하기도 한다. 예술의 대중적 확산은 예술의 문턱을 낮춰준 문화센터의 평생교육프로그램과 각종 공모전이 역할 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흐름에 서예도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 공모전의 역사를 보면, 일제시대 조선미술전람회를 표방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가 시작점이다. 국전(國展)은 심사를 둘러싼 잡음으로 인해 1981년 30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고, 이듬해 대한민국미술대전(약칭 민전)이 막을 올렸다. 민전(民展) 시대를 맞았지만 서예부문은 건축과 사진처럼 미술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서예협회, 한국서가협회가 분리되었다. 분파는 서예계만 국한된 일은 아니겠으나 이른바 서예 3단체 시대를 맞은 것이다. 제주에도 3단체서예공모전으로 '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전(서예부문)', '제주특별자치도서예대전', '한라서예전람회'가 개최되고 있다. 그 외에 '한글사랑서예대전'과 '제주4·3상생기원전국서예문인화대전', '전국추사휘호대회'까지 여섯 개의 공모전(휘호대회 포함)이 개최되고 있으니, 자원이 없는 제주서예가 살얼음을 걷는 형국이다. 도내 공모전들은 도내 자원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전국을 대상으로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적인 거리감 때문에 타 지역 출품자수가 적고 도내 출품자들조차도 소속 단체별로 나뉘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5년 도내 6개 공모전의 서예작품 접수현황을 보면, 최소접수 공모전이 126점이고 최다가 315점이다. 전국공모전으로는 역부족이다. 도내공모전의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예공모전 통합은 한국서단의 단일화를 염원하는 이 시대의 담론이다. 제주는 인구 및 경제규모가 전국의 1%지만, 제주에서의 움직임은 시작의 의미와 더불어 표본적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내도 관광객 수가 1360만 명을 넘고, 중국인 관광객 수가 220만 명을 넘는 실정이라고 보면 그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제주에서 3단체 공모전 통합의 시도는 2006년 한 차례 있었으나 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서예분과)의 불참으로 무산되고, "서단의 결속과 통합의 미래를 준비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주특별자치도 서예문인화총연합회가 결성되었다. 며칠 전 이 단체는 11주년 기념전과 제주서예인의 날 행사를 가졌다. 당초 공모전의 통합을 목적으로 태동된 단체로서 제주서단의 결속을 다져오고는 있지만, 아직 통합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미술대전 운영권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제주도연합회에서 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로 이관되는 현시점에 또 다시 통합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승적 견지에서 기득된 이권을 버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국 최초로 통합 서예공모전을 치를 수 있다면 효율적으로 예산과 인력이 집중되고 글로벌 제주문화의 위상을 한층 드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후 시너지효과가 더욱 커져 (가칭)제주국제서예비엔날레와 같은 좀 더 메머드한 서예축제도 준비될 수 있을런지 누가 알 말인가. <양상철 융합서예술가, 서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