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10)제주지역 화훼농가 1세대 김신일씨

[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10)제주지역 화훼농가 1세대 김신일씨
"백합 생산량 90% 일본 수출… 위기 넘는 해법은 고품질"
  • 입력 : 2016. 06.23(목)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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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에서 화훼농사를 30년째 짓고 있는 김신일씨가 안덕면 광평리 수출용 백합종구생산단지에서 출하를 앞둔 백합꽃 사이에서 웃고 있다. 강희만기자

파인애플·바나나 파동 후 화훼로 작목 전환
초반 경험없어 발품 팔며 선진기술 등 익혀
강정화훼수출단지 도내 꽃 수출 전진기지로
종구 수입 의존도 여전히 높아 농사에 부담

제주도 서귀포시에서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 파인애플과 바나나 농사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아이들에게 파인애플과 바나나는 한 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귀한 과일이었다. 하지만 달콤함도 잠시, 외국산이 수입되기 시작하자 값이 금세 곤두박질쳤다. 특히 고소득을 기대하고 후발주자로 열대과일 재배에 뛰어든 이들은 수입산에 맥을 못춰 쓴맛을 봐야 했다.

제주지역 화훼농사의 1세대로 생산량의 90%를 일본으로 수출중인 김신일(68·서귀포시 강정동)씨. 그도 파인애플과 바나나 농사에 뛰어들었다가 수입개방으로 부인 조옥순(61)씨와 함께 흘린 땀방울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쓰라림을 겪었다.

커다란 시련을 겪은 그가 고민끝에 1980년대 후반 대체작목으로 선택한 것이 화훼 농사다. "화훼는 경험이 없다 보니 매일처럼 기록한 영농일지와 농민신문, 국내는 물론 일본과 유럽 등 해외 선진기술을 배우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계획영농 덕분에 어렵사리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전업농으로서 그의 일상은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김신일씨가 간직하고 있는 사진엔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늘에 이른 지난 시간이 담겨있다. 사진은 태풍으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내린 모습.

화훼 농사를 짓는 농가가 늘어나면서 90년대 초반 작목반을 꾸려 조직화하고, 일본·네덜란드 등 화훼 선진국 연수에 적극 참가해 습득한 백합 구근을 키우는 양구법과 재배기술을 작목반원들에게 보급하면서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화훼재배농가의 생산능력이 향상되면서 개별농가 단위로 이뤄지던 수출의 경쟁력 확대를 위해 농협의 수출 조직화에 선도적 역할을 하며 중문농협 화훼수출협의회를 이끌기도 했다. 당시 중문농협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훼 수출을 위해 발벗고 나서준 덕분에 수출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는 그다. 그 후 강정지역 화훼농가들로 구성된 강정화훼수출단지가 탄생했고, 2009년 농림부가 주관한 전국 159개 원예전문생산단지 평가에서 수출 신장·규모화·자조금 조성·품질·교육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최우수단지로 선정되는 등 도내 화훼 수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내고 있다.

1998년부터 백합을 일본에 수출하기 시작한 그의 영농목표는 지금도 철저하게 수출에 맞춰져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화훼 내수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수출시장을 뚫어야 내수물량이 조절되면서 시장가격도 좋아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수입하는 수출용 종구의 구 둘레가 18~20㎝ 크기의 큰 것을 쓴다. 종구 가격이 개당 600원으로 꽃농사의 60%정도를 종구비가 차지할 정도로 부담이 크지만 통상적으로 쓰는 것보다 큰 크기의 종구를 쓰는 이유 역시 고품질 백합 생산을 위해서다.

화훼농사를 함께 짓는 부인 조옥순씨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그는 연작피해 극복을 위해 그동안의 영농경험을 토대로 표준비율의 물과 영양소를 배합한 양액재배를 도입해 품질을 높이고 있다. 또 겨울철 수출시장을 겨냥해 가을에 백합 종구를 심기에 앞서 여름철은 태양열을 이용한 하우스내 토양을 소독하는 시기다. 수확이 끝난 후 토양을 갈아엎고 비닐멀칭해 토양온도를 65℃ 이상으로 높여서 일주일정도 두면 토양살충 효과를 볼 수 있다. 증기소독 등 여러가지 방법을 쓰면서 터득한 병충해 방제법이다. 그의 백합 농사에 대한 열정은 제주도 화훼 부문 최고농업인상과 농협중앙회에서 선정하는 새농민회 본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다.

화훼농사 30년 경력의 그지만 지금도 어쩔 수 없는 큰 어려움은 수입 종구가 꽃을 피운 후에야 정상적인 종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더러 바이러스에 감염됐거나 뿌리썩음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애를 먹곤 하는데 건강한 종구인지 여부를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같은 시기에 수입한 종구를 심어도 백합 꽃대마다 달리는 꽃봉우리가 2~3개, 5~6개 등 천차만별이다. 수출용은 일본에서 선호도가 높은 4개 이상의 꽃봉오리가 달린 것이어야 한다. 종구 수입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강정화훼수출단지가 2008년 농림부의 지원을 받아 안덕면 광평리 해발 540m 지역에 수출용 백합종구생산단지도 조성해 종구를 자체 생산하고 있지만 대량생산의 한계로 지금도 여전히 종구의 80%는 수입에 의존한다. 그나마 행정에서 지원해주는 종구 구입비가 도움이 된다.

일본으로 수출할 백합을 중문농협 직원들과 함께 포장하고 있다.

백합 품질이 좋고 일본 엔화가 강세일 적엔 백합 1본당 1000원 이상은 받아 제법 괜찮았다. 그런데 2011년 일본 대지진 여파로 화훼 소비가 위축되고 엔저까지 겹치면서 수출물량이 줄어 몇 년을 고전했다. 다행히 최근 엔화가 조금 올라 일본의 꽃 성수기인 올 겨울엔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다.

국내시장 상황과 관련해서도 걱정이 크다. 갈수록 꽃 소비가 줄어드는데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화환을 포함한 경조사비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설정하고 있어서다. 그는 "국내 꽃 소비량의 60~70%정도가 경조사용으로 쓰이고, 거래되는 화환가격의 대부분은 10만원 이상이어서 경조사비 상한이 10만원으로 설정되면 조화를 사용한 화환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국내 꽃 소비가 갈수록 줄어들고 일본수출이 예전같지 않은데다 중국산 꽃 수입까지 늘면서 백합 농사를 접고 만감류로 작목전환하는 이들이 생겨 40명이 넘던 제주도백합생산자연합회 회원도 지금은 30여명으로 줄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들이 직장생활을 접고 꽃농사를 짓고 있어 후계자가 생겨 든든하다고 했다.

백합 종구 구입을 위해 방문했던 강원도의 화훼농가.

"FTA를 거스를 수 없다면 극복해야 하는데, 양이 아닌 고품질로 승부해야 한다. 일본 등 해외 소비자가 인정하는 최고 품질의 꽃을 생산한다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먹힐 것"이라는 그. '경조화환, 가짜꽃 조화로는 진심을 전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생화로 보내세요'라는 그의 명함에 적힌 글은 꽃농사꾼의 간절한 바람을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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