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7)봉개동 동회천마을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7)봉개동 동회천마을
인정과 부지런함이 끊임없이 샘솟는 마을
  • 입력 : 2026. 07.24(금) 02:00
  • 양기훈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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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용천수는 해안가 마을에서 솟아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중산간 지역임에도 귀한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나니 그 귀한 물을 마을 이름에 그대로 사용했다. '새미'라는 제주어의 정겨움은 살아있는 생명을 부르는 느낌이다. 샘(泉) 뒤에 누군가를 지칭하는 어미로 쓰이는 '이'를 붙여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격상시켰다. 이런 생각이 도달한 곳은 용비어천가의 그 유명한 구절 '샘이 깊은 물은 가마래 아니 그츨새'. 깊은 감동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마을이다. 동회천 샘물의 내력을 샘물 주변에 새겨 넣었기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 마을의 역사와 함께한 샘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겠다. '이 물은 순수한 자연생수로 가물어도 끊임없이 흘러 시원하고 1960년대 중반까지 식수로 사용하였다. 이 물로 인하여 미인과 훌륭한 인물이 나왔고 무병장수하였다는 것이 여러 가문의 고증과 기록으로 남아있다.'

제주시 도심지에서부터 동쪽으로 12㎞ 정도 떨어져 있는 중산간에 위치해 있다. 마을 동쪽은 조천읍 와흘리, 서쪽은 서회천동, 북쪽은 삼양동에 닿아 있다. 경계를 따라서 선을 그어보면 남북으로 긴 모양이 그려진다. 가장 낮은 북쪽이 해발 80m 지경, 한라산 방향으로 남쪽 끝은 해발 400m 지경에 자리한다. 특이한 것은 이 정도 해발고도를 가진 마을들은 오름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새미마을 경계 안에는 오름이 없다. 하지만 마을 가까이서 마치 호위무사처럼 둘러싼 오름들이 많다. 새미오름, 바농오름, 지그리오름과 족은 지그리오름, 미오름, 절물오름, 명도암오름 등이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관심은 절물오름에서 원당봉에 이르는 지맥이 어떠한 정기를 품고 있다는 것.

김재호 마을회장

정주여건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입증한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6500년에서부터 4500년 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이다. 2010년 도로 확장 공사과정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들을 학술적으로 확인한 결과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조사결과가 발표되기 40년 전 어느 날 밭일을 하던 주민이 밭에서 발견한 돌도구를 보여주며 '철이 나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쓰던 돌로 만든 연장'이라고 하면서 고기도 자를 수 있을 정도의 날이 서있다고 보여줬지만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갔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400년 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선사인들의 생활터전이었다는 신비감이 마을 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다.

김재호 마을회장에게 동회천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좋은 물만 샘솟듯이 부지런함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마을입니다." 주변 마을 사람들의 샘이 나서 자주 던지는 덕담이 있다. '눈 뜨면 일, 눈 감으면 잠'. 눈이 떠 있을 땐 쉬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한다는 그 부지런함을 가장 큰 명예로 이어왔다. 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영농과 축산을 동시에 하는 집안이 많았다. 일욕심이 유전자 속에 들어 있어서 태생적으로 끈질긴 노동 승부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1980년대 국가 농업평가기관에서 마을주민 단위로 파악한 결과 전국 5위에 가까운 부촌을 일궈냈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행정적인 표현으로 도농복합지역에 가깝다. 하지만 필자가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얻은 신조어가 아니고서는 정확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도농복합이 아니라 '전농복합'이다. 전원주택과 농업지역이 만난 상황. 더욱 정확한 현실은 부농을 이룬 농민들이 전원주택을 꾸미고 살아가고 있다고 봐야 옳다. 정원에 놓인 화분들이며 잘 가꿔진 나무들. 애정이 잔뜩 들어간 마당 분위기들이 부럽다. 문화지수까지 높은 풍요로운 농촌을 향해 뚜벅뚜벅 미래로 향하는 마을공동체의 결기가 아름답다.

반가우면서도 기대되는 사실은 교육청에서 몇 년에 걸친 공사 끝에 회천분교 자리에 '유아교육체험원'을 지어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을발전과 관련해 주민들의 관심이 크다. 유아들의 해맑은 웃음과 맑은 샘물의 만남. 꿈이 솟아나는 희망의 터전으로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새미마을. <시각예술가>



바쁘게 일하는 호박잎처럼
<수채화 79㎝×35㎝>

폭염을 동반한 뙤약볕, 그 7월의 태양 아래 회천마을 사람들만큼 부지런한 대상을 발견하고 그렸다. 돌담을 힘겹게 넘어가는 호박잎과 줄기들. '더워도 어쩌겠냐'고,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탐스러운 호박을 열 수가 없다고 바쁘게 움직인다. 닮았다. 새미마을 농부들을. 상징성이라고 하는 짜릿한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돌담과 호박잎의 만남이 이토록 정겨울 줄은 몰랐다. 그리는 과정이야 묘사해야 할 대목들이 많아서 고난의 행군이지만 그래도 저 호박잎처럼 부지런해야 한다는 각오로 땀을 흘리며 그렸다.

멀리 언덕의 잔솔 숲에서부터 농업시설로 보이는 중경의 방풍막과 탈색된 슬레이트 지붕에 이르기까지 새미마을 그대로의 분위기가 이 폭염 속 호박잎의 행군을 응원하고 있다. 덩치 크고 탐스러운 호박열매를 얻기 위해 삼복더위에도 쉬지 않고 행동반경을 넓혀가는 호박잎이나 새미마을 농부의 마음이나 '똑같다'. 돌담들이 구멍이 많은 다공질 현무암이다. 지표면에서 식은 용암이라는 의미다. 집을 짓고서 울타리를 돌담으로 쌓으며 나눴을 정겨운 대화가 저 구멍 속에 도란도란 새겨져 있다. 대물림의 미학이 삶의 보편적인 행동양식이던 시절에도 저 호박잎들은 매해 저렇게 뙤약볕 아래 도둑놈처럼 담장을 넘었을 것이다. 도둑들은 훔쳐가지만 저 호박잎들은 천사 같은 마음이라 선물을 주려고 저 고생을 하는 것이니. 새미마을이라는 곳에서 그리게 된 그림을 통해 얻은 각오. 가을이 되면 다시 찾아와 탐스럽게 익을 호박열매까지 그려야겠다.



밭이라는 풍경
<수채화 79㎝×35㎝>

세상에 그 어떠한 것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농촌 새미마을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것은 농민들의 일터 밭이다. 참으로 그릴 것이 많은 여기에서 숱한 경쟁후보들을 물리치고 밭이 선택된 것은 뭔가를 수확한 후에 드러난 흙, 그 색깔이 너무 좋아서다. 경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유 중에 가장 큰 요인은 주변에서 묵묵하게 밭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고 있는 초록빛깔과 그 속에 숨은 그림처럼 보이는 집들. 무엇보다 일등공신은 오른쪽에서 아주 짙은 색감으로 면적대비를 이루며 태양광선의 눈부신 내리쬠을 강조해 준 나무들이다. 이러한 화면 구성 요소들 정도로 밭을 선택해 그렸다고 설명하면, 어딘가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그래서 새미마을 밭의 궁극적 특징이자 놀라운 토목감각을 명분으로 그리게 된 것이다. 무관심하게 바라보면 그냥 평평한 밭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왼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다. 마을 동쪽 경계를 이루는 진영내 방향으로 빗물이 고이면 빠질 수 있도록 만든 밭. 혹시 몇 백년 전에 저 밭을 일궜다면? 암반을 치우고 잡목을 제거한 후에 곡괭이와 삽으로 저 경사를 만들었다면 그 노동량은 측정단위가 오직 집념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런 뙤약볕 아래서 땀범벅이 된 상태로 흙과 씨름하다가 저기 저 그늘 아래서 잠시 쉬고 있는 몇 백 년 전의 농부들을 떠올리며 그렸다. 흙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얻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밭을 만들던 조상들을 떠올리게 된다. 밭이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한 지혜로움.

<제작 지원=제주특별자치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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