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마을 설촌을 시작한 구체적인 인물이 전해지는 것은 흔치 않다. 그 자체로 스토리텔링 자원이다. 500여 년 전, 허영익이라는 인물이 20세에 무과에 급제해 '병절교위' 보직을 받고 관직에서 크게 공을 세우니 '보공장군'이라는 직위까지 하사 받았다. 그러나 연산군 때 조정이 혼란에 휩싸이자 형제들이 정쟁에 연루돼 관직이 박탈되니 성읍리로 낙향하게 된다. 당시 현청 후원에 머물며 정착할 곳을 보러 다니던 중 가세오름을 돌아 가메물 인근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흰사슴이 땅을 긁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는 지관에게 이 지역 일대의 지세를 물으니 산천기운이 사방에서 모이는 고귀한 길지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허영익이 이곳 인근에 초가 여러 채를 지어 성을 쌓고 택지로 터를 마련하면서 세화리라는 마을이 형성됐다. 허영익장군의 묘비 기록에 의하면 그때가 1504년(연산군 10년) 봄이다. 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가세오름에 올라 이 마을 영역을 바라보면 어딘가 모르는 상서로움이 몰려드는 느낌이 든다. 설촌 유래를 듣고 바라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고태숙 이장
이 마을은 제주도 남동쪽 가시천이라고 하는 냇가가 마을 중심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중산간 마을이다. 고유지명으로는 '돈내오름', '도노름', '돈오름'이라고 불리던 곳. 길게 늘어진 수풀지대에 있는 마을로 가늘고 길게 늘어졌다고 해서 '가는 곳'이라고 불리었고 이를 한자표기로 차용하면 세화리(細花里)가 된다.
북쪽으로는 가시리와, 남쪽으로는 세화2리와 접하고 있으며 해안에서 4㎞ 정도 떨어져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세화1리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 주민들의 의식이다. 마을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희망을 추구하는 진취적인 모습. 전통적으로 부지런하기로 유명해 주변 마을에서도 부러워하는 알부자 마을이다. 그 풍요는 물질적인 것보다 마을공동체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농촌마을이라는 터전은 이 세 가지 요소의 융합체라고 한다. '일터', '삶터', '쉼터'가 그것. 세화1리가 추구하는 세상은 이 셋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희망찬 미래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쉼터'의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줄기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마을 곳곳을 걸어 다니다 보면 쉽고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방향은 농촌마을의 전통적 정체성을 온전히 살리면서 이를 토대로 자동차 소리보단 새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힐링공간으로 자리매김 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이 바로 주민자발적인 마을공동체 행복 만들기다.
고태숙 이장에게 세화1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자신감 있게 "세대 간의 소통과 교감"이라고 대답했다. 조상 대대로 이웃끼리 살아온 농촌마을이라고 하지만 세대 간의 상반된 가치관에 의해 소통이 힘든 경우를 간혹 발견하게 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요인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마을공동체 문화를 최고의 강점이요, 장점이라고 밝힐 수 있는 것은 청년 회원들의 마인드를 중장년층이나 노인회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믿음과 기대를 보여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현명함을 뛰어넘는 어르신들의 집단적 지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명문화 돼있진 않지만 청년세대를 향해 관용구처럼, 접두사처럼 통용되는 구절이 감동적이다. "앞으로 너희들이…." 이 마을공동체를 물려받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사람은 이 마을 밖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가르침이자 실천의지다.
과거지향적인 고정관념에 발목 잡혀 곤두박질쳤던 수많은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마을의 운명과 공동체문화를 진취적으로 개척하려는 공감대가 마을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열매는 이런 마을에 뿌리내려 수확된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면서. <시각예술가>
화산국민학교의 의미<수채화 79㎝×35㎝>
이 마을이 어떤 위상을 지녔었는지 폐교가 된 학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기에 서당들이 있었다. 1923년 일제강점기라고 하지만 중산간 농촌마을은 유교 전통문화가 강하게 지배하던 시절, 명신서당은 마을 내 후학 인재 양성에 뜻을 둔 어르신들이 있어서 근대식 교육을 표방하게 된다. 1925년 명신사숙으로 개편돼 서당 체계와 결별. 1946년 12월 해방된 나라에서 명신국민학교로 개교. 1950년 법이 바뀌어 초등학교 명칭은 지역 지명을 따르게 되자 세화리와 토산리에서 한 자씩 차용하여 화산국민학교로 변경됐다. 76년 전, 세화리, 토산리, 가시리 등 6개 마을 아이들이 이 학교 운동장에 다녔다. 교육의 중요성을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마을이 시대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근대교육을 시작했기에 주변 마을에서 이 학교까지 먼 길을 걸어서 다녔다는 것이다. 이후 화산초등학교 분교인 가시분교, 토산분교, 가마분교 등이 훗날 모두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의미하는 바가 크다. 선각자적 위상을 보여줬던 마을의 상징. 폐교를 활용한 전통놀이지원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이 풍경을 그리게 된 이유는 간명하다. 마을공동체의 역사문화자원이라는 인식을 그림으로나마 표현하기 위함이다. 건물 색깔을 희색으로 바꿔서 그린 것은 앞으로 마을주민들이 하얀 백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듯 진취적으로 활용하기를 희망하며, 교육당국의 슬기로운 판단이 있기를.
된장 항아리를 품은
<수채화 79㎝×35㎝>
여기 눈부신 햇볕이 내리쬐는 공간의 명칭은 '도내오름 영농조합법인-깊은 맛 된장'이다. 특징적이고 이색적인 풍경을 찾아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정겨운 모습. 회화적인 구도나 광선의 안배가 절묘하게 주인공인 항아리들을 위해, 마치 된장맛의 깊이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콩농사에 대한 자부심을 기반으로 한다. 할머니의 할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며느리에게 전수하고 또 전수해 온 풍토성과 노하우가 곧 기술력이다. "된장은 정성이다." 귀가 따갑게 들어온 가치관. 직접 밭에서 김을 매며 농사를 지은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서부터 시작되는 발효식품이 지닌 시간성. 모든 과정이 정성이다.
장맛 좋기로 유명했던 마을공동체의 역사를 대물림하고 싶은 열망이 느껴져서 풍경화로 담아낸 것이다. 장맛은 자연적 요인을 담아내는 작업이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제조업이 아니기에. 세화1리가 보유한 자연환경적 배경을 믿고, 된장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마을에서 뚝심 갖고 영농조합법인 마을사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문제의식에 있다. 행정이 세화1리의 콩과 된장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판로 개척에 도움을 주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농외소득이 아니다. 이 마을에서 가꾼 콩으로 만든 그 자체가 직접적인 농업소득이다. 소득증대를 행정기관이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
<제작 지원=제주특별자치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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