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8)한경면 조수2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8)한경면 조수2리
누구네집 누구 제사까지 아는 정겨운 마을
  • 입력 : 2026. 08.07(금) 03:00  수정 : 2026. 08. 07(금) 09:17
  • 양기훈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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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마을 안에 들어서면 어딘가 모르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도드라진 특징이 없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향기가 그 어떤 꽃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 마을이 형성된 것은 160여 년 전이다. 어찌 생각하면 개척된 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1864년경 전주 이씨 일가가 비옥한 토지와 식수를 얻기 위해 이주하게 된 것이 설촌의 시작이며 점진적으로 밀양 박씨, 화양 조씨. 제주 고씨, 광산 김씨, 전주 강씨 등이 입주하면서 구체적인 마을의 형태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성씨를 나열하는 이유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마을공동체 정서가 나타나기 때문. 작은 마을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웃사랑 문화다.

조성홍 마을이장

어느 집안의 내력에서부터 식솔들의 일까지 마치 한 가족처럼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위해 배려하는 그 마음들이 조수2리라고 하는 마을의 정체성이기에 어찌 생각하면 구닥다리 씨족 논리 같지만 각 집안을 존중하려는 자세에서 자기 집안이 존중받는 그런 끈끈한 마을공동체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마을 명칭은 '불그못' 혹은 '불근못'이라고 불렀다. 설촌 당시의 명칭인 불그못(朱池洞)의 지명 유래는 당시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던 연못인 속칭 '오름허리물통'의 토질이 황토흙으로 물이 고이면 색깔이 붉어서 불그못이라고 불렀다는 것.

평화롭게 삶을 이어오던 주민들이 1948년 4·3으로 말미암아 마을이 모두 불타고 뿔뿔이 헤어져 생활하다가 7개월 만에 소개령 해제와 재건령으로 다시 환향해 마을을 재건하고 명칭을 신성동이라 개칭해 사용했다. 조수리의 자연마을 중 하나인 조수리 신성동으로 생활하다가 본리와의 거리가 7km나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편도 없고 행정이나 회의 등 모든 것을 조수리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점점 가중되니 1975년 5월 10일 자로 행정리인 조수2리로 분리 승격,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중심도로에서 느껴지는 시각적 특징은 집집마다 입구에 옹기들이 설치미술품처럼 놓여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농촌마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공공미술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더욱 중요한 옹기마을 전통을 메시지로 담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옹기를 위한 점토 흙이 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초반 마을 출신 장인 7명이 합심해 옹기계를 조직하고 항아리, 허벅, 병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굽고 판매하며 가계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고령화와 이농현상, 전통단절 등을 피할 수 없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 유통되는 저렴한 그릇들과 경쟁력에서 밀리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기제작 전통을 마을이미지로 반영하자는 획기적인 생각이 실천적으로 등장하면서 생태마을가꾸기 친환경 사업과도 메시지를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방문해 확인한 옛 옹기 굽던 가마, 조수2리 노랑굴터를 바라보며 경제논리에 의해 밀려나게 둬서는 안 될 소중한 문화자원이라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마을공동체의 의지와 함께한다면 이러한 옹기마을 전통의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행적적 지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옹기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이를 만드는 문화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조성홍 이장에게 조수2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공을 꼭 갚는 마음 자세."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에 대한 공은 마치 빚을 갚듯이 꼭 돌려주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규모가 작은 마을이기에 더욱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하나의 문화·정신세계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 마을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방법은 현실적으로 서로 돕고 살아가는 길 뿐이라는 조상들의 사회성 깊은 지혜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되는 마을이다.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풍요를 더욱 중요시하는 마음가짐이 모여서 조수2리라는 마을이 된 것이라고 해야겠다. 이 아름다운 전통이 끊임없이 숨 쉬는 마을의 미래는 밝고 희망차다. 이웃의 소중한 가치가 옹기종기 정겹다. <시각예술가>



모란동산 농업용수 물탱크
<수채화 79㎝×35㎝>


사각 모양의 농업용수 저장시설을 흔하게 보다가 원기둥 형태를 자연 속에서 만나니 정겹고 조화로운 동질성이 느껴져서 그렸다. 여름철 가뭄이 길어져서 애가 타는 농민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다른 것은 뒤로 하고 우선 저 농작물들의 생명수부터 그려야겠다는 마음. 그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때문이기도 하다. 큰 강과 같은 수자원이 없는 이 섬에서 지하수는 너무 귀중한 자원이다. 어떤 자료를 보니 제주도내 지하수 관정은 무려 48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거기에서 농업용 지하수관정은 3/2가 넘는 3218 곳.

저 아름다운 조형물처럼 보이는 농업용수도 그중에 하나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리게 된 연유는 과연 저 귀중한 지하수 자원이 농민들에게 골고루 활용될 수 있도록 행정시스템과 운영체계가 작동되고 있느냐는 물음. 농민들의 자발적 운영방식을 빌미로 공공의 자산을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전담 공직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렸다. 그림으로 보기에는 그냥 아름다운 한 점의 풍경화지만 저 농업용수가 가지고 있는 현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농민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갈등의 모습을 꺼려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분들은 없는지. 행정책임자들은 면밀하게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농업의 복지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농업용수엔 소외가 없어야 하기에. 행정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곳은 공평분배를 위한 공익적 책무.



구분오름 올라가는 길
<수채화 79㎝×35㎝>


오랜만에 흙길을 보니 반갑고 정겨워서 그렸다. 농로들도 대부분 포장이 된 현실에서 마을 중심도로에서 몇십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흙길 오르막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회상공간이다.

연필담채 기법을 동원해 나무와 풀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8월의 강렬한 태양광선이 자연의 요소들과 어떻게 명암을 형성하며 본질을 드러내고 있느냐. 왼쪽의 나무들과 오른쪽에 무성한 풀, 그 사이에 흙길이 오르막을 형성하며 올라가고 있다. 나무 그림자들이 흙길의 울퉁불퉁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눈부신 오후, 여름날을 보내는 자연을 길이라고 하는 테마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저 길을 그리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이 섬이 보유한 화산회토의 색과는 미세하게 다른 컬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딘가 모르게 회갈색 느낌을 주는 화산회토와는 다르게 붉은색이 감도는 점토질 토양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그리면서 저 흙길 때문에 문득 떠오른 생각, '아~! 그래서 옹기마을이구나.' 풍토성을 벗어난 어떠한 생산적 기반도 불가능하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숙연해진다. 오래전 자동차가 없던 그 시절, 저 길을 등짐지고 내려오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 짐 가득 나무를 지고 내려와 가마에 불 지폈을 그 열정을 생각하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풍경화를 보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조수2리를 고향으로 둔 사실에 가슴 뿌듯하리라. 대단한 것을 찾아서 그리는 것보다 더 큰 의미요, 가치이기에.

제작 지원=제주특별자치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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