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찾아 읽는 사람은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안다. 그래서 시인이거나 시인이기를 갈구하며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좋은 시를 찾아 읽는다. 좋은 시를 찾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좋은 시 자체를 찾기 어렵다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 나왔다. 지금껏 13권의 시집과 1권의 시선집을 출간하고 24년간 새로운 시와 시인을 발굴해온 이시영 시인의 새 책 '시 읽기의 즐거움-나의 한국 현대시 읽기'이다.
시인은 시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로 "뛰어난 시구는 계속되는 반복 감상에도 물리지 않는다는 점"을 꼽는다. 안도현의 시 '사냥' 중 "토끼는 어느 먼 골짜기에다/ 제 발자국을 찍으며 서럽게 뛰어갈 것이다" 부분을 예로 들며 이렇게 설명한다.
"양식이 떨어져 마을 가까운 산으로 내려왔다가 동네 사냥꾼들을 피해 '환약 같은 토끼똥'만을 남기고 깊은 산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눈밭에 '제 발자국을 찍으며 서럽게 뛰어'가는 토끼의 자태가 얼마나 생생한가! 겁먹은 듯이 서러운 붉은 눈을 빛내면서 능선을 달리는 토끼의 모습이 곧 눈에 잡힐 듯한데, 나는 이 구절들을 수십번도 더 읽었으나 물리지 않았으며 읽을 때마다 언어의 맛이 새로웠다."
1부는 시인이 열과 성을 다해 배우고 즐겨온 선배 세대의 시를 읽어낸 글들이 주류를 이룬다. 백석에서 박목월과 조지훈을 거쳐 신경림, 고은, 김지하, 김수영, 김종삼까지 시인과 함께 읽다보면 시를 즐기는 다채로운 방식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2부는 200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금요일의 문학이야기'에서 청중과 함께 읽은 시집들이 주를 이룬다. 장철문, 안도현, 나희덕, 박형준, 김행숙 등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들의 신작시집 가운데 골라 어떤 면이 놀라운지, 그 시가 왜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설명한다.
3부는 1970~1980년대의 격동기 한국문학운동에 앞장선 문인 편집자의 입장에서 고난의 시절을 함께 견뎌온 선후배·동료 문인들에 대한 정겨운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창비시선' 편집자로서 지녔던 고뇌와 자부심, 김지하 시집과 관련해 군부독재 시절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생생하다.
시인은 맹렬한 독서인이자 예리한 판단력으로 정확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편집자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에 대해서만은 한없는 설렘과 순정을 숨기지 않는다. 시의 음악성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