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문제 1~3]

(가) 좋음을 중시하는 입장은 윤리적 상황에서 행위의 결과가 도달해야 할 목적이 되기 때문에 통상 목적주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옳음을 중시하는 입장은 행위의 동기와 이유가 옳음에 있다고 보고 있으며, 어떤 행위가 옳은 행위라면 그 행위는 반드시 행해져야만 한다고 보기 때문에 의무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는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는 당연히 옳은 행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좋음을 윤리적 목적으로 간주하는 목적주의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목적주의는 옳음은 좋음이 극대화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즉 가장 좋은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가장 좋은 것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목적주의는 몇 가지로 구분된다. 고대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긍정하였고 최대의 쾌락을 누리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현대 철학자들은 이를 쾌락주의로 규정하면서 목적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한다. <중략>



(나) 어떤 관념은 다른 관념을 함축하며 또 어떤 관념들은 다른 관념으로부터 도출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삼각형의 관념을 지니고 있다면 이로부터 우리가 평면 위에 그려진 세 각을 지닌 도형의 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이 때 후자의 관념은 전자의 관념의 연역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만일 우리가 모든 인간은 죽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와 더불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면 이로부터 우리는 소크라테스도 죽는 존재라는 점을 연역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 때 우리는 평면 위에 그려진 어떤 도형이 삼각형이라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왜 그것이 세 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즉 세 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삼각형이라는 사실로부터 도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인간이며 모든 인간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왜 소크라테스가 죽는 존재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관념의 영역에서의 설명은 관념들 사이의 연역적 관계를 추적하는 형태를 취한다. <중략>



(다)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윤리학에 있어서 '도덕은 이성이나 합리적 추론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들에 의해 '도덕감'이란 개념이 윤리 인식의 한 중심 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흄(Hume)에 의하면 이성은 개념이나 명제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 혹은 명제와 그 실제 대상과의 일치 여부를 주로 다룬다. 따라서 그 판단은 언제나 참 또는 거짓, 즉 '옳다, 그르다'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즉, 그것은 어떤 사실을 확인할 뿐, 칭찬이나 비난을 통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지시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이성은 행위를 이끄는 동기가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이성은 행동을 이끌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양심이나 도덕감과 같은 행동의 근원이 될 수 없다. <중략>



(라)(1) 쾌락기계 속에 한 사람이 누워 있다. 그는 마취 상태에 있으며, 전극 단자가 그의 머리에 붙어 있다. 이 장치를 통해 온갖 행복감이 느껴지도록 알맞게 제어된 전기 자극이 그의 뇌에 전달된다. 이 기계를 통제하고 있는 의사는 이 사람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꽤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상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면 기계장치가 꺼짐과 동시에 이 사람은 아무런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 당신에게도 이 기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자. 당신은 기꺼이 들어가겠는가?

(2) 철수는 군 입대를 앞둔 20대 초반의 젊은이이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이웃나라와 전쟁을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런데 철수를 아끼는 외국의 한 친지가 밀항선을 준비해 놓고 외국으로 도피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철수는 의무나 법(규범)을 위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 생명까지 바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내가 어떤 의무나 법(규범)을 지키는 것도 결국은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나는 자네에게 진지한 문제를 제공할까 하네." 대학생은 점점 더 열을 내었다. "(…) 자, 보게. 여기에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그리고 모든 사람한테 해가 되는 병든 노파가 있네. 뿐만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며 자기 자신도 왜 살아가는지 모르고 있는 다 늙어빠진 노파일세, 알겠나?"

"음 알겠네." 열띤 목소리로 말하는 친구를 골똘히 바라보며 장교가 대답했다. <중략>



(마) 결과론, 의무론, 계약 이론과 더불어 도덕 이론에 관한 논쟁에 새로이 등장하게 된 하나의 이론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덕의 윤리이다. 덕의 윤리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전반의 영향이 상당히 크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덕의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최근의 윤리적 논쟁들에서 규칙들이 - 옳은 행위의 규칙, 정의의 규칙, 유용성의 규칙 등이 - 강조되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이들은 도덕적 삶의 본질적인 핵심은 우리가 어떤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라고 믿는다. <중략>



(바) 아침에 깨어 보니 온 누리엔 수북하게 첫눈이 내렸는데, 대문 옆 블록 담위에 웬 흰 남자 고무신짝 하나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얼마 안 신은 듯한 거의 새 고무신짝이었다. 아내와 나는 다 같이 꺼림칙한 느낌에 휩싸였다.

"웬 고무신일까. 누가 장난을 했나."

내가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중얼거리자,

"아무리, 장난으로 저랬을라구요."

아내는 어쩐지 뾰로통해지면서 말하였다. 아내는 현대 여성이어서라기보다는 본시부터 이런 일에는 대범한 편이었는데, 요즘 조금은 나를 닮게 된 모양이었다.

사실은 이런 일에는 내 쪽에서 훨씬 소심하고 과민한 편이어서 아내는 이런 나를 조금은 구질구질하게 여겨 왔었다.

간밤에도 근처 어느 집에서 굿을 하는 모양으로 꽹과리 소리가 요란했다. 텔레비전 안테나가 무성하고, 갓 대학 출신의 젊은 샐러리맨 부부가 많이 살고 있는 동네인데도, 한밤중이면 굿하는 꽹과리 소리가 가끔 멀리 가까이 들리곤 하는 것이다. 아니, 반드시 한밤중만도 아니다. 한밤중의 그 소리가 더 기분이 나쁘고 음산하게 들린다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그 일을 지나가는 말로라도 입 밖에 낸 일은 없었다. 어쩐지 그런 유의 얘기를 주고받기조차 처음부터 꺼림칙했던 것이다. <후략>



[문제 1] 제시문 (가)의 두 입장을 바탕으로 제시문 (나), (다)를 비교하시오.(500자 내외 / 30점)

[문제 2] 제시문 (가)의 두 입장을 모두 활용하여 제시문 (라)의 상황 (1)~(3)을 각각 평가하시오.(600자 내외 / 30점)

[문제 3] 제시문 (바)에 드러난 상황과 유사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제시문 (마)의 관점을 활용하여 해결 방안을 논술하시오.(700자 내외 / 40점)





■ 우수답안/ 인문사회부문 대상(진웅 오현고등학교 3)

[문제1]

제시문 (가)에는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두 입장이 나타나 있다. 우선, 목적주의는 쾌락과 행복 등의 좋음을 극대화하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무주의는 의무나 정당성을 통해 절대적인 원칙을 따르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제시문 (나)는 관념으로부터 관념이 도출되면서 형성되는 연역적 관계가 필연성을 갖는다고 본다. 즉, 연역적 관계는 예외가 없는 절대적이고 원칙적인 관계인 것이다. 이는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근거가 절대적 원칙에서 비롯된다는 의무주의의 입장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도덕적 참과 거짓이 존재하며, 이는 이성적인 추론 과정을 통해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시문 (다)는 도덕적 참과 거짓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성은 단지 논리적 관계와 사실을 확인할 뿐, 행위를 이끄는 동기가 될 수 없다. 도덕적 행위는 참과 거짓이 아닌 관찰자 개인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며, 관찰자가 시인하는 행위가 도덕적 행위인 것이다. 이는 쾌락과 행복 등의 감정을 윤리적 정당성으로 여기는 목적주의의 입장과 부합한다.

[문제2]

제시문 (라)의 상황 (1)은 온갖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쾌락기계에 관한 것이다. 목적주의 입장에서 쾌락기계는 행복의 극대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의무주의 입장에서 쾌락기계는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쾌락기계에 들어간 사람은 일정 기간동안 쾌락만을 느끼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사망하는데, 이는 인간을 쾌락의 수단으로 여기는 행위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황 (2)에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 전쟁 위기에 처한 자신의 국가에서 도피하려는 인물이 나타난다. 이러한 행위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목적주의 입장에서는 옳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행위로 인해 다수의 사람이 고통을 겪는다면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윤리적이지 못하다. 또한, 이 행위는 병역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의무주의 입장에서도 옳은 행위가 아니다.

상황 (3)에는 무가치한 노파의 죽음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인물이 등장한다. 목적주의 입장에서는 노파의 죽음이 행복의 극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노파를 희생시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의무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생명을 물질적 가치로 판단하는 행위와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보편성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옳은 행위라 할 수 없다.

[문제3]

제시문 (바)에는 자신들의 집으로 들어온 액인 고무신을 이웃집으로 던져놓는 마을의 상황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타인에 대한 배려 부재와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적 사고가 만연한데, 그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층간소음 문제이다. 층간소음 문제는 현대 사회의 다세대 주택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웃 간의 다툼 끝에 과격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하는 현대 사회의 이기주의적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나만 편하면 돼'라는 사고방식으로 인한 타인 배려의식의 부재에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제시문 (마)에 따르면, 도덕적 개인은 무조건 규칙에 따르는 자가 아니라 훌륭한 개인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이를 층간소음 문제에서 본다면 개인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지만, 이웃으로서 혹은 시민으로서의 특성을 고려해봄으로써 타인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이미 타인들 혹은 다른 집단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고려하고 중시한다면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주의적 사고는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입장들의 세분화된 분석 능력이 돋보여


■ 심사평/ 김형진 대정여고 교사

JDC 전국중고등학생 논술대회가 매 년 계속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이 논술 대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그러한 대회의 취지에 걸맞게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대회를 운영하고, 교육과정 내 출제 및 창의적이고 심도 있는 논술 출제를 위해 인문사회 6명의 출제위원 모두가 모여 10회 이상의 논의와 검토 과정을 거쳐 출제함으로써, 학생들의 논술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의미 있는 논술 작성의 기회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인문사회 논술 제시문은 (가) '목적주의와 의무주의'(『EBS 수능 특강』), (나) '스피노자의 연역법'(『서양 윤리학사』, 로버트 L. 애링턴), (다) '흄의 공감(동정심)의 윤리학(『EBS 인터넷수능』), (라) 생활과 윤리 관련 사례들(『우리들의 윤리학』, 박찬구), (마) '메킨타이어의 덕의 윤리'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바) '큰산' (이호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발췌·수정하였다.

[문제 1]은 제시문 (가)의 두 입장을 바탕으로 제시문 (나), (다)를 비교 분석하는 '비교 분석형' 논제이다. 우선 (가)의 두 입장인 '목적주의(좋음을 중시하는 입장)'와 '의무주의(옳음을 중시하는 입장)'의 입장을 요약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문제 2]는 (가)의 두 입장을 모두 활용하여 제시문 (라)의 상황 (1) ~ (3)을 각각 평가하는 '기준제시 평가형' 문제로, (라)에서 제시된 (1) ~ (3) 각각의 상황들을 (가)의 두 입장인 '목적주의'와 '의무주의' 입장에서 모두 평가해야 한다. [문제 3]은 제시문 (바)에 드러난 상황과 유사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제시문 (마)의 관점을 활용하여 해결 방안을 논술하는 '대안 제시형' 문제이다. 이웃들에게 자신에게 넘어온 '액(고무신)'을 이웃에게 떠넘기는 (바)의 상황과 유사한 현대 사회의 문제점으로 '이기주의', '개인주의' 등을 들 수 있다.

인문사회 답안 중에서 대상을 수상한 오현고등학교 진웅 학생은 [문제 1]의 핵심 논제를 바르게 파악했으며 제시문 (가), (나), (다)의 핵심 내용을 명확히 서술하고, (가)의 두 입장과 (나), (다)를 논리적으로 연관하여 설명하였다.

고등학교 논술은 평소 분석적인 글 읽기는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그와 함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보다 이해한 내용을 다양한 상황에 적용시켜 확장해 나가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