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구술사(口述史) 강좌를 듣고 있다. 필자는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의 구술사 강의를 들으면서, 근현대 제주를 구술사로 아카이브시켜 제주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맹아적 역할을 한다면 정체모를 문화예술의 섬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구술사란 개인이나 집단이 기억하는 사실을 면접을 통해 육성으로 듣고 기록한 것을 말한다. 주로 문서기록에만 의존하던 전통적인 역사사료의 범위를 일반 대중의 기억으로 확대시킴으로써 역사가의 주관적인 상상력과 학문적 픽션이 가미 될 위험이 적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약 30여년 전에 한국에 소개된 구술사는 2000년대부터 다양한 기관에서 대규모 구술 채록 사업과 함께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중요한 연구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주에도 역사의 재해석이 필요했던 4·3분야에서 처음 도입하여 그 성과를 보여주고 있고, 최근에는 민속학분야까지 확대되어 활용되어지고 있다.
우리 도민에게 있어 구술사 도입의 큰 성과라고 한다면 50여년 이상을 4·3사태로 불려 지다가 2000년'제주4·3사건 진산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4·3사건으로 명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현상으로 만 보여주었던 사태를 사회적 문제로 주목하여 처리해야 할 사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 정책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4·3진상위원회에서 많은 자료수집과 생존자와 유족의 생생한 증언 구술사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섬이란 공간 안에 천년 탐라국을 유지하였던 제주는 육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독특한 사회생활문화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자체의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발굴 조사에서 드러난 유적만을 보면서 당시를 유추하고, 간간히 고려, 조선 등 주변 국가의 사서에서 보여주는 내용만으로 제주문화의 기원을 논할 뿐이었다. 사실과 증거주의에 입각한 연구방법 때문에 기존자료에서 볼 수 없는 무형의 전승유산은 소외 시 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제주는 10여년 사이 급격한 변화를 격고 있다. 많은 관광객과 급격한 이주민 유입에서 오는 문화의 혼종성, 중산간까지 뻗어 오른 도시개발, 높은 빌딩 사이로 보여주는 이국적 분위기의 도시경관은 근현대 제주를 잊기에 충분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제주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생활문화를 잘 보여주는 관혼상제 때 오갔던 의식들조차 생략되거나 변화되어 타지역과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게 되었다. 행정에서 아무리 문화정체성을 떠들어댄들 도민들은 그 실체를 이하거나 체감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정체성이 무엇인가라는 반문을 한다.
늦었지만 제주도정이 6단계 제도개선에서 제주 섬 문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문화예술의 섬 조성에 대한 특례를 마련하겠다고 하는 건 다행스럽다. 하지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제도개선을 기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유무형의 자산을 기록화 하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혹자는 많은 보고서와 영상, 사진 등 자료가 많아 무용론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보고서의 데이터화된 자료와 단편적 영상, 순간의 포착 말고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애전반을 기록해 보자는 것이다.
제주형 문화예술의 섬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기본 자료로서, 우리 부모님세대가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전해지는 생활모습 사실 전반을 풀어놓은 구술사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미래의 후손들에게 제주의 문화권, 제주정체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기본 데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오수정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