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누가 빈곤을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는가

[책세상]누가 빈곤을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는가
J.A.홉슨의 '빈곤의 문제'
  • 입력 : 2016. 09.02(금) 00:00
  • 손정경 수습 기자 jungkson@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모든 산업의 밑바닥에는 반드시 '고한'이 존재한다. 어느 산업이든지 '담배꽁초'처럼 비참하게 짓밟히는 노동자 계급이 존재한다."

존 애트킨슨 홉슨(이하 J.A.홉슨)이 목도한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노동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시공간을 초월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살인적 업무량이 죽음으로 내몬 구의역 김 군, 인격적 모독에도 침묵해야만 했던 김포공항 미화원들. 모두 한국 노동현실의 희생양들이다. 이들은 용역업체 직원이란 신분 때문에 정규직보다 더 오래 일했으며 어떤 수모도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노골적 차별과 박봉뿐이었다. 죽도록 일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 빈곤의 굴레,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J.A.홉슨은 '빈곤의 문제'에서 빈곤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산업사회의 구조적 문제, 즉 '고한제도'의 산물임을 밝혀낸다. '고한제도'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 등을 의미하며, 산업·경제적 폐단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용어이다. 그럼 이 '고한제도'의 원인은 무엇이며, 해법은 없는 것일까.

그는 '고한제도'의 본질은 미숙련 노동자 계급의 과잉공급, 소규모 고용주의 증가, 자본의 무책임이라 지적한다. 이어 그는 이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수단의 도입, 노동조합의 결성, 평균 노동일수 단축 등의 해법을 제시한다.

"고한 산업('고한'이 관찰되는 산업)은 법의 사각지대이고, 동시에 영향력 있는 노동조합도 부재하다. 만약 노동조합이 충분히 강력하면, 고한은 뿌리내리지 못한다. 지금 '고한' 노동당하는 노동자가 필요한 것은 국가의 법 제도와 노동조합이라는 자구책이다." 그는 이런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명백한 노동인권 후진국이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발표한 국제노동자권리지수 조사 결과에서 3년 연속 최하위인 5등급을 기록했다. 장시간 노동이 일상인 나라, 때론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지급되지 않는 나라, 외주화·하청이란 이름하에 기본적 인권이 무시되는 나라. 부끄럽지만 직시해야 할 지금의 한국 노동현실의 민낯이다. 이에 빈곤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담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울림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빈곤의 역사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 이 문제를 두고 책의 말미에서 J.A.홉슨은 이렇게 전한다. "미숙련 노동자는 너무 가난하고, 무지하고, 약해서 조직을 만들 수 없다. 조직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미숙련 노동자는 계속해서 가난하고 무지하고 약하다. 이것이 딜레마다. 이 딜레마를 풀 열쇠를 찾는 사람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다." (주)레디셋고. 1만5000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76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